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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들이 외치는 소리

Voice of Martyrs

言論이 正直해야 社會가 바로 나갈 텐데! 1960년 봄, 3.15.부정선거 당시 우리 언론을 되돌아보자!

글 :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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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論이 正直해야 社會가 바로 나갈 텐데! 1960년 봄, 3.15.부정선거 당시 우리 언론을 되돌아보자 ! 당시의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의 사설과 보도의 정론직필이 어떠했는지 ?! Msgr. Byon Date : 2011-08-16 10:26 조회. 1705
言論이 正直해야 社會가 바로 나갈 텐데 ! 
 
 
진리와 진실도 다수결로 결정하려고 하나 ?
 


言論이 正直해야 社會가 올바로 나갈 텐데, 일부 언론이 정직하지 못한 이유는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 언론사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정직하지 못한 언론인이 있는 그 언론기관은 惡論의 조직체가 될 뿐이다. 채송화가 왜 백일홍이 아니냐고 우겨대는 말도 特筆大書하는 것은 실로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 현상이다. 有識하고 有能한 직원보다 正直하고 善良하고 勤勉한 사람들을 써야 한다. 

더구나 部分을 全部와 同一視하여 선동하는 것은 事理判斷力을 상실하였거나, 意圖的인 故意와 惡意로서, 대단히 不正直한 反言論的이며, 매우 非言論的인 행위다. 얼굴에 검은 점이 하나 있으면 점박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흑인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인 절도범 1명을 잡았다고하여,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절도범죄자들처럼 선전하는 것은 언론폭력이 아닐 수 없다. 

언론을 무대로 삼아 정신적이며 지성적인 言論暴力을 자행하는 언론기관들이 적지 않게 보인다. 이러한 폭력언론에 침묵하며 묵인하는 것은 언론 폭력에 同助하는 행위이며 共犯者들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담당 기관들이 暴力 言論人들의 言論 暴力을 袖手傍觀하며, 이를 용납하는 것도 국민들에 대한 공개적인 言論 暴力 후원이 아닐 수 없다. 

非合理的이고 非論理的이며 反理性的이고 非良心的며 不合理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나, 보도하는 기관이나, 추종하며 동조하는 사람들은, 그 신분이 정치인이든, 언론인이든, 신앙인이든, 교육자든, 법조인이든, 예술인이든, 공무원이든, 종교인이든, 누구든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사회의 破壞者들이다. 正常的인 인간들의 言語도 아니고, 論理나 論說도 아니다. 

분명히 오늘날 우리 사회 안에서 縱橫無盡으로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니며 언론폭력을 茶飯事로 삼고 있는 言論暴徒들은 武裝暴徒들 못지 않게, 善良하고 正直한 국민들, 특히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을 비참하게 망치고 있다. 위대한 나라, 大韓民國의 國旗를 내리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청소년들을 위하여 교육적으로 言論暴徒들은 國防 차원에서도 反國家 事犯으로, 公安事犯으로 조치해야만 하지 않을까!? - Msgr. Byon  
Writer :  Msgr. Byon    Date : 2011-08-16 10:26   조회.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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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진리와 진실도 다수결로 결정하려고 하나 ?!    

변기영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7년 10월 17일 21:02 , 발행일 2017년 10월 18일 수요일 / 경기일보, 제22면에서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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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진실이 없으면 정의가 있을 수 없으며, 정의도 자유가 없는 곳에는 있을 수가 없으니 진리도, 진실도, 자유가 없는 곳에는 있을 수가 없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된다(1+1=2)는 수학적인 진리는 전세계 수학자들이 모여서 다수결로 결정한 것이 아니고, 또 앞으로도 새로운 수학인들이 다시 모여서 다수결로 변경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세계 전 인류가 배우고 깨달아 따르며 활용해야만 하는, 영구불변의 진리다. 결국 모든 진리는 인간들이 발견하고 깨닫고 활용하며 따라야 하는 것일 뿐, 새로이 창조하고 변경하거나 꾸미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7년 다음에는 2018년이 온다는 시간적 진리 역시, 전세계 모든 시계 제작인들과 우주 천체 물리학자들이 모여서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새로이 또 다수결로 변경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수리학이나 물리학이나 천문학에 있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비물리학적인 이성과 정신세계의 형이상학, 즉 철학, 윤리학, 정치학, 법률학, 신학, 등의 종교적 영역에서도, 자유를 존재가능조건으로 삼는 진리와 정의는 다수결과 무관하게 그 자체가 영구불변적이다.

그런데 오늘의 세계는 민주주의 다수결 만능의 전성시대라고 할 만하다. 특히 정치계에 있어 다수결 원칙은 성경이나 불경이나 유교의 사서삼경 이상으로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존중하고 앞에 내세우며 천하의 진리인 듯, 다수결 원칙을 ‘최고의 天命(천명)’처럼, 때로는 다수결을 만들어가며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다수결의 절대적인 전제조건은 너무나 잘 모르고 있으니, 다수인들의 자유롭고 바른 양심과 건전한 상식 수준이 함량미달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절대적인 조건, 즉 ‘다수결의 절대적인 전제조건’에 대하여 너무나 모르고 있고 확인하지 않으며, 무시하고 또 소홀히 여기고 있다. 마치 언론 보도의 자유와 권리에는 사실을 사실대로 정직하고 공정하게, 공익을 위하여 보도해야만 하는 의무와 책임이 절대적인 전제 조건으로 있음과 같다. 

그래서 비일비재한 소수의 폭력이나, 독재자 1인의 비민주적 폭력도 매우 두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민주적이라고 내세우는 다수결 주창자들 다수의 폭력은 소수의 폭력이나 1인 독재자의 폭력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이다.

최근 우리는 다수의 폭력이 소수의 폭력보다 비할 수 없이 더 끔찍하다는 사실을, 중국의 이른바 ‘문화혁명’을 통하여 모를 수가 없게 되었고, 특히 지난 세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1917년을 전후한 북유럽 각국에서도 그 비극을 세계 인류가 너무나 뼈저리게 직시하여 왔다. 

그러므로 정의와 진리의 절대조건이 되는, 자유가 없는 사람들의 말과 글과 행동에는 진리와 진실이 있기 어렵고, 특히 정의가 살아있을 수 없으니, 정의가 없는 권력이나 권한 행사는 폭력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교황 베네딕도 16세 교서).

지금 우리는 이번에도 ‘휴전선의 이동으로 끝나게 되기 쉬운, 새로운 전쟁'의 전주곡이 요란하게 매일같이 울려 퍼지는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다. 남북한만의 전쟁이 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미중공만의 전쟁도 아니며, 더욱이 가공할 핵무기 사용의 제3차 세계대전의 출발과 동시에 종결이 될 수도 있다는, 인류 자멸의 비참한 대재앙급 천하대란의 전쟁이 임박한 듯, 많은 국민들이 참으로 불안해하며 착잡한 예감을 누를 수가 없는 모습이다.

이러한 전쟁은 인류의 고귀한 자유와 정의와 진리와 진실을 무시하고 짓밟아 버리는 비인간화 민족 집단들의 다수결을 빙자한 소수와 1인 독재자들의 오만한 폭력행위다. 따라서 비양심과 몰상식의 극소수 인간들이 외치는 원앙 소리만을 따라가도록, 광란의 집단들이 부르짖는 함성으로, 인류자멸의 대흉사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우리 모두 자유를 위한 순교자들이 되고, 정의를 위한 용사들이 되어, 진리와 진실을 지키고 아끼고 가꾸어 나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야 하겠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5천여만 명의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으나, 국민들이 너무 적지 않은가? 

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저작권자 ⓒ 경기일보 (http://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핵문제가 어디 정치문제며 사상문제며 노선문제란 말인가?


핵문제에는 保守도, 進步도, 中道도, 南韓도, 北韓도, 社會도,


宗敎도,天主敎도, 佛敎도, 따로 무관하게 있을 수가 없다.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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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영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7년 12월 12일 20:26 / 발행일 2017년 12월 13일 수요일 제22면에서 퍼온 글 추가보완.>

[삶과 종교], 설마 난리가 나랴 ?


한반도 전쟁 임박설을 실증하는 현장과도 같이, 최신예 무기들이 대목장을 이루며 집결, 전시되고, 실전 같은 대규모 군사훈련이 반복되자, 세계인들과 많은 국민들이, 특히 우리 종교인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애타는 기도를 매일 바치면서도, 전쟁이 나지 않기를 바라고 믿는 마음으로, “설마, 정말 전쟁이 날까?” 하는 생각이 어느덧 ‘신념’처럼 되고 말았다. 사실, 쌍방의 계속되는 Max Thunder Drill (대규모 군사 집단 훈련)자체가, 전쟁 임박의 확증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쟁은 통치권자들의 결정이나 정치인들의 합의로 군인들이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그 지역 백성들의 죄악이 천지간에 차고 넘치면 하늘도 말리지 못하고 막지 못하여, 인간들이 자청하는 천벌이다. 악하고 독한 사람들이 이렇듯이 많으니, 어떻게 난리가 아니 날 수 있으랴? 결국 전쟁발발을 정치외교 문제로 보다는, 타락한 국민 다수의 윤리 문제로 보아야 한다. 益智書에 이르기를, 사악함이 두레박에 가득차면 하늘이 반드시 목을 베어 벌하느니라 하였다.<惡鑵이 若滿이면 天必誅之>. 


성탄절 만이라도 남북한 우리 민족 모두에게 하느님의 참 평화가 내리기를 기도하자. 2천년 전 첫 성탄절 때, 베들레헴 주막집 마구간 말구유에 하느님의 아들이 아기 예수님으로 성탄하시던 날 밤, 하늘에서는 천사들이 부르는 노래가 하늘과 땅 사이에 울려 퍼졌는데, 그 의미와 교훈은 善과 平和의 메아리였다.


“존경과 영광과 찬미는 천상에 계신 하느님께 드려야 하리로다!

지상에서는 마음이 착한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도다!”

(Gloria in altissimis Deo, et in terra pax hominibus bonae voluntatis. Editio Vulgatae, Luc. Caput II, art. 14)


평화는 칼과 돈이 있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마음이 겸손하고 선량한 사람들의 것이다. 또한 존경과 영광과 찬미는 왕이나 황제 같은 사람들에게 드릴 것이 아니라, 천상에서 진리와 사랑과 정의로 우리를 평화로이 보살피시는 하느님께 드려야 하리라.


청석골 두령들이 부스러기 얻어먹는 재미에, 두령님 공경에만 치중하고, 머리 위에 계신 하느님은 망각하고 있듯이, 오늘의 인류가, 먹고 놀고 즐기며, 심지어, 각 종교의 알만한 지성인들과 성직자들도, 존경과 영광과 추앙과 인끼에 한눈을 팔며, 오락과 유흥과 사치와 향락에 기울어져, 두 눈을 다 팔며 좌충우돌하면서 허둥대고 있지는 않는지?


그러나 핵폭탄과 장거리 미사일, 특히, UN과 미국과 북한이 싸움판 앞에 나와서 으르렁거리는 폭언을 들으면서, 실제로 일어나는 전쟁은 결코 대한민국만의 南北전쟁일 수가 없고, 南北韓과 美中日, 5개국만의 전쟁도 아닐뿐더러, 제3차 세계대전의 시작이 될 수밖에 없다는 예감이 든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전쟁이니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거부하고, 불허한다고, 전쟁을 기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로, 세계 인류 문명을 초토화시키는 그 피해규모와 결과 때문에, 불가피하게 전 세계가 들러붙게 되어 있다. 구한국 말처럼 !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사변과는 상반되는 현실과 결과가 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더욱이 1세기 전, 청일(淸日)전쟁이나, 일로(日露)전쟁 때, 朝鮮의 입장보다 더 난처한 처지가 지금이 아닐까? 하지만, 이번 전쟁은 유물론 공산주의 사상과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최종 결전장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남북통일을 위하여 남한의 공산화를 지원 주장하는 시도와 선전 자체가 천만 부당한 것이다. 남북통일과 남한의 共産化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동포들을 들볶던 남북통일 전쟁의 핑게와는 달리, 만일에라도 이번 전란이 일어나더라도, 남북통일은 더욱 멀어지고, 휴전선의 이동으로 끝나는 자업자득의 민족상잔의 비극 반복일 뿐이다. 그 이유는 칼과 돈을 집결시키며,국제적인 싸움 전문꾼들을 불러모으고,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신무기 대목장과 시험장이 열리는 곳에, 당연히 고객들이 집결하게 되어 있다.


지금 또다시 불씨가 된, Jerusalem의 경우, 이미 주후 72년 경, 로마 대제국의 가장 막강한 제7 기마군단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공격하던 Titus 장군이 난공불락의 도성으로 자신하던 Jerusalem을 완전 파괴하면서, 당시 유태인들에게 외쳤다.

"하느님을 공경한다는 이 놈들아, 내가 바로 너희가 공경하는 하느님의 도리깨니라 !

하느님의 도리깨 맛을 좀 보거라" (Flagellator Dei, Ego sum,,,Histr.Tacitus,,.).


종교인들의 신앙 때문에 전란이 피해 가지는 않는다. 세계 1,2차 대전 때, 유롭에 신부,수녀, 목사들이 없었는가!? 260 여분의 교황님들 중에 60%~70%가 전란으로 구속되고, 유배되고, 처형당하여, 순교하였다. 허기야, 교회 창립자 예수님과 그 대리자 사도 베드로를 비롯한 대부분의 교황님들이 순교하였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아기 예수님이 성탄하신 마구간과 말구유가 없는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는 없다. 우리 각자를 기다리는 우리 자신이 성탄할 마구간 말구유로 내려가 보자. 거기에는 인류의 대량 살상무기가 보이지 않는 평화가 있다.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그냥 마냥, 한없이 성탄하는 인생,! 성탄하는 가정, 성탄하는 사회는 불화와 충돌과 전쟁이 멀리 사라지고 평화가 깃들어 있다. 사회 모든 분야 어디에서나, 우리는 모두 성탄할 특은을 받은 자들이다. 올라가는 용기도 필요하고, 돌아가는 지혜도 도움이 되겠지만, 내려가는 겸손은 꼭 있어야 한다.


가정에서의 善과 평화는 母女의 관계며(Bonum et Pax),

사회 어디에서나 진실과 정의는 父子의 관계다(Veritas et Justitia).

인간사회 안에서 정의와 평화의 최저선(Ad minimum)을 법학에서는 正義’라고 하며,

최상의 무한선(Ad maximum)을 신학에서는 '愛德’이라고 한다.

그래서 善은 평화의 어머니요, 진실은 정의의 아버지다.

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저작권자 ⓒ 경기일보 (http://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입력 : 2017.10.15 오전 6: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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