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풍경소리

WIND BELL

[삶과 종교] 설마 난리가 나랴?- 2017년 12월 13일자, 경기일보,[삶과 종교]난에서 퍼온 글.

글 : Msgr. Byon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 스크랩
webmaster@kyeonggi.com 노출승인 2017년 12월 12일 20:26 발행일 2017년 12월 13일 수요일 제22면 에서 퍼온 글의 원고 제약본에 본 원고 초안 일부 추가본.
[삶과 종교], 설마, 난리가 나랴 ?  
 
 2017년 12월 13일 수요일     제22면  
            
한반도 전쟁 임박설을 실증하는 현장과도 같이, 최신예 무기들이 대목장을 이루며 집결, 전시되고, 실전 같은 대규모 군사훈련이 반복되자, 세계인들과 많은 국민들이, 특히 우리 종교인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애타는 기도를 매일 바치면서도, 전쟁이 나지 않기를 바라고 믿는 마음으로, “설마, 정말 전쟁이 날까?” 하는 생각이 어느덧 ‘신념’처럼 되고 말았다.
 
그러나 전쟁은 통치권자들의 결정이나 정치인들의 합의로 군인들이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그 지역 백성들의 죄악이 천지간에 차고 넘치면 하늘도 말리지 못하고 막지 못하여, 인간들이 자청하는 천벌이다. 악하고 독한 사람들이 이렇듯 많으니, 어떻게 난리가 아니 나랴? 결국 전쟁발발을 정치외교 문제로 보다는, 타락한 국민 다수의 윤리 문제로 본다. <惡鑵若滿, 天必誅之 - 益智書>

성탄절만이라도 남북한 우리 민족 모두에게 하느님의 참 평화가 내리기를 기도하자. 2천년 전 첫 성탄절 때, 베들레헴 주막집 마구간 말구유에 하느님의 아들이 아기 예수님으로 성탄하시던 날 밤, 복음사가들이 기록으로 남겨 오늘까지 전하는 감격에 넘치는 현상은, 하늘에서는 천사들이 부르는 노래가 목동들이 듣고 놀랄 정도로, 하늘과 땅 사이에 울려 퍼졌는데, 그 의미와 교훈은 善과 平和의 메아리였다.
 
“존경과 영광과 찬미는 천상에 계신 하느님께 드려야 하리로다! 지상에서는 마음이 착한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도다!” 
   "Gloria in altissimis Deo, et in terra pax hominibus bonae voluntatis."(Editio Vulgatae, Luc. Caput II, art.14.)

 
    평화는 칼과 돈이 있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마음이 겸손하고 선량한 사람들의 것이다. 또한 존경과 영광과 찬미는 왕이나 황제 같은 사람들에게 드릴 것이 아니라, 천상에서 진리와 사랑과 정의로 우리를 평화로이 보살피시는 하느님께 드려야 하리라.

그러나 핵폭탄과 장거리 미사일, 특히, UN과 미국과 북한이 싸움판 앞에 나와서 으르렁거리는 폭언을 들으면서, 실제로 일어나는 전쟁은 결코 대한민국만의 南北전쟁일 수가 없고, 南北韓과 美中日, 5개국만의 전쟁도 아닐뿐더러, 제3차 세계대전의 시작이 될 수밖에 없다는 예감이 든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전쟁이니, 우리 마음대로, 우리가 거부하고, 불허한다고, 전쟁을 기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로, 세계 인류 문명을 초토화시키는 그 피해규모와 결과 때문에, 불가피하게 전 세계가 관여하며, 들러붙게 되어 있다. 구한국 말처럼.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사변과는 상반되는 현실과 결과가 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더욱이, 1세기 전, 청일(淸日)전쟁이나, 일로(日露)전쟁 때, 朝鮮의 입장보다 더 난처한 처지가 지금이 아닐까? 하지만, 이번 전쟁은 유물론 공산주의 사상과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최종 결전장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남북통일을 위하여 남한의 공산화를 주장하는 시도와 선전 자체가 천만 부당한 것이다. 남북통일과 남한의 共産化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동포들을 들볶던 남북통일 전쟁의 핑게와는 달리, 만일에라도 이번에 전란이 일어나더라도, 남북통일은 더욱 멀어지고, 휴전선의 이동으로 끝나는 자업자득 민족상잔의 비극의 반복일 뿐이다. 그 이유는 칼과 돈을 집결시키며, 인류대량 살상 핵무기를 생산하므로써,국제적인 싸움 전문꾼들이 모이게 되고, 서로 끌고 당기게 되기 때문이다. 신무기 대목장과 시험장이 열리는 곳에, 당연히 고객들이 집결하게 되어 있다. 

 
지금 또다시 아랍 세계의 불씨가 된, Jerusalem 의 경우, 이미 주후 72년 경, 로마 대제국의 가장 막강한 제7 기마군단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공격하러 온 dux Titus 장군이 난공불락의 도성으로 자타가 자신하던 Jerusalem을 완전 파괴하면서, 당시 유태인들에게 외쳤다.
 
"하느님을 공경한다는 이 놈들아, 내가 바로 하느님의 도리깨니라. 하느님의 도리깨 맛을 좀 보거라"                                   
"Flagellator Dei, Ego sum."( Histr.Tacitus.).

 
종교인들의 신앙 때문에 전란이 피해 가는 경우는 드물다. 세계 1, 2 차 대전 때도, 유롭에는 기도하는 신부,수녀, 목사들이 많이 있었다.   260 여분의 교황님들 중에, 60%~70%에 달하는 교황님들이 전란으로 구속되고, 유배되고, 처형당하여, 순교하였다. 허기야, 교회 창립자 예수님과 그 대리자 사도 베드로의 뒤를 따라, 대부분의 교황님들이 순교하였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아기 예수님이 성탄하신 마구간과 말구유가 없는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는 없다. 우리 각자를 기다리는 우리 자신이 성탄할 마구간 말구유로 내려가 보자. 거기에는 막강한 인류의 대량 살상무기도 보이지 않고, 증오심과 복수심의 불이 타오르는 4각 링 위에 올라온, 광폭한 맹수들의 언어폭력도 들리지 않는, 마음이 겸손하고 선량한 예수 아기와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만이 있는 선과 평화가 있다.

성탄하는 인생, 성탄하는 가정, 성탄하는 사회는 불화와 충돌과 전쟁이 멀리 사라지고 평화가 깃들기 시작할 것이다. 사회 모든 분야 어디에서나, 우리는 성탄할 특은을 받은 자들이다. 올라가는 용기도 필요하고, 돌아가는 지혜도 도움이 되겠지만, 내려가는 겸손은 꼭 있어야  한다.

가정에서의 善과 평화는 母女의 관계며(Bonum et Pax, mater et filia.), 사회 어디에서나 진실과 정의는 父子의 관계다(Veritas et Justitia, pater et filius). 인간사회 안에서 정의와 평화의 최저선(Ad minimum)을 법학에서는 ‘正義’라고 하며, 최상의 무한선(Ad maximum)을 신학에서는 ‘愛德’이라고 한다. 그래서 善은 平和의 어머니 요, 眞實은 正義의 아버지다. 
 
성탄의 평화는, 천지를 진동시키는 수만명 군중들이, 마치, 쉰 뜸물 마신 황송아지의 쉰 목소리가 되도록, 간장이 끊어지도록 소리소리 외치는,저  애절한 고함소리의 군중들과 광장에 보다도, 주막집 마구간 한쪽 구석에 있는 말구유 위에 뉘여계신 예수 아기와 함께, 성탄의 평화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의 죄많은 우리 인류가 정말 천만 불행 중 최악의 불행으로, 핵무기가 악용되는 실로 무섭고 끔찍한 전란의 천벌, 제3차 세계대전을, 오늘의 우리 인류가 마침내 끝끝내 막지 못하여, 상상할 수 없는 인류 도시들의 초토화가 시작되는 경우,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는 주님의 인류구원제 현장에서 애닲아 우시던 그 어머니 성모 마리아와 함께,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바쳐야 할 것이다.(忍死延生 - 黃嗣永 帛書 末未).
 
한마디로, 인류가 수백만명씩 집단으로 엄청난 인명피해를 당하는 죽음의 바다에서, 주님의 죽으심을 묵상하며, 십자가 곁에서 함께 못박혀 죽으면서 기도하던 저 右盜와 같이, "주님, 오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며, 또한, 한국 천주교회 순교선조들과, 특히, 가장 혹독한 고통을 받으시며, 10 여일 간의 餓死罰 중에 飮毒시키고, 끝에 가서는 窒息死 당하시는, 광암 이벽 성조의 최후를 묵상하며, 천주님께서 주신 우리의 목숨을 다시 우리 생명의 주님께 바치도록 하자!.

 
우리 겨레 스스로 구원의 진리의 움을 티우고, 연한 첫 새 싹이 돋아나게 하던 시절, 이 땅에서도 1785년 늦봄, 한국천주교회 창립자, 하느님의 종, 세자 요한 광암 덕조 이벽 성조께서, 명례방집회 때, 한국 최초의 천주교 박해로 집안에 감금되시어, 신앙을 위하여 10 여일 간의 餓死罰을 받으신 후, 이어진, 飮毒强要로 極惡處方 刑을 당하시고, 마침내 멍석말이하듯,두꺼운 이불로 겹겹이 온 몸을 숨쉴 틈없이 싸서 確認死와도 같이, 窒息死 당하시었다.
 
천주교회가 한국에서 최초로 천주께 바치시는 [殉敎祭] 올리실제, 그 당시 장례식을 전후 한, 박제가와 정약용의 애타는 만사를, 우리 모두 되새기며, 혹시라도 이번 전란 중에 살아남는 자들은 재터미가 된 무수한 우리 인간 형제들의 죽음의 도시 위에서, 거룩한 성인성녀들의 죽음을 묵상하며, 우리 주님과, 특히, 광암 이벽 성조의 죽음을 묵상하며, 정약용 승지와 초정 박제가의 만사와 추도사  본 뜻을 명상하며, 기도하며 우리의 목숨을 천주께 바치도록 하기를 서로서로 알리고 힘쓰기를 부탁하자! 
*이하 St. A. Daveluy 주교의  이벽 성조 최후에 대한 기록-
 
"Au printemps de l'année 1786(Piengo) il fut pris de la peste courante (le Jo ping des Chinois) et après huit ou neuf jours quand la sueur commençait à sortir ceux qui le soignaient l'enveloppèrent de plusieurs couvertures, malgré tous les soins et efforts qui lui furent prodigués, il ne fit qu'étouffer sous ces lourds vêtements et la sueur ne pouvant percer et sortir, il en mourut à l'âge de 33 ans."
 
 - <* 다불뤼 주교의, [조선순교자 비망록] 옛 기록(1850년 경) 의 첫 머리 중에, 최근 발굴된 역사자료를 따라,1786년은 1785년으로, 또, 흑사병이라는 전염병이 당시 없었고, 박해자들에 의한 가문이 내린 아사벌로 8일 혹은 9일간 금식을 강요당하셨고, 이어서, 음독까지 강요당하셨고, 마지막으로, 두꺼운 이불로 멍석말이하듯, 겹겹이 이벽 성조의 몸을 말아서 호흡이 불가능하게 하여 질식사 당하셨음이 잘못 訛傳되었음을 바로잡는다.- 본 홈페지의,"이벽 성조의 일생과 최후" 참조 >
 
文度公 丁若鏞 承旨의 友人 李德操 輓詞 結句.

仙鶴下人間 - 신선나라 학이 인간 세계에 내려오시니,
軒然見風神 - 우리는 광암 공에게서 風神을 보았도다.(광암은 木神이나, 山神이나, 海神이나, 天神이 아닌,[風神] 자체로 보였었다.)
,,,,,,,,,,
乘秋忽飛去 - 가을이 되어 문득 훌쩍 날아가 버리시니,
怊悵空勞人 - 애가 끊어지도록 슬퍼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광암을 지켜드리지 못하고, 창자가 끊어지듯 애닲아한들 무슨 소용 이 있나!?)

楚亭 朴齊家의 李德操 檗 哀悼詩 結句

晉人尙名理   진나라 사람들은 명분과 이치를 내세우며 숭상하여, (진나라 사람은 대국이라 하던 중국인들을 통칭한 말)
淸譚亂厥世   실현가능성도 없는 힌 소리로 그 시대를 더욱 어지럽혔었지만,
德操議六合   광암 이벽 자네는 상하 좌우 선후 만인과 늘 상의하며 논했는데,
何嘗離實際   어찌 이렇게도 일찌기 현실 세계에서 떠나게 되었나?
匹夫關時運   사나이 대장부로서 부득불 만나는 운명에 얽히었어도,
破屋志經濟   가정 일 다 파하고 오로지 만백성을 구하는 일에만 뜻을  다하였지!
,,,,,
遽廬罷殘夢  심산궁곡 오두막집에다가 남은 꿈을 모두 풀어버리고,(鶯子山의 天眞菴에 있던 天學堂 ?)
靑山葬靈慧  푸른 산 속에 그 영특한 지혜를 장사지내고 가네 그려, (鶯子山의 西北쪽에 있던 天眞菴에 있던 天學堂?)
,,,,,,,,
高嘯送飛鴻 - 날려 보내는 기러기의 드높은 울음 소리에,
乾坤暗雙涕 - 하늘과 땅마져 한 쌍이 되어, 속 눈물 흘리며 한없이 울었네. (일반 친지들과 상감 정조까지 모두가 들어나게 애도하지 못하고, 광암 공의 최후를 들으며, 아까워하고, 애닲아 하였음을 말한다)-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초역 
입력 : 2017.12.12 오후 9:17:14
Copyright ⓒ 변기영 몬시뇰 사랑방 Servant Hall of Msgr. Byo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