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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교황님 말씀 중에

Holy Father's Speech

Holy Father Francisco, to Korean bishops,"Memory guard (기억 지킴이)"!

글 :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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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지킴이 !
변기영 몬시뇰이 [사랑방]을 열었습니다.  
사랑방 윗묵 구석 구석에 쳐박아두었던 보따리들을 이것저것 내다가 풀어서  
교회와 사회에 혹시라도 도움이 될 것들은 죽기 전 알리려 합니다. [사랑방 출입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한국어 cbck 번역문 & European languages from Vatican. va>
 
한국 주교들과 만남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말씀
 
서울,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강당에서. 
2014년 8월 14일, 목요일
 
강우일 베드로 주교님께서 여러분의 이름으로 해 주신 형제적인 환영 말씀에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 교회의 활기찬 삶을 직접 보게 된 것은 저에게 커다란 복입니다. 목자로서 여러분은 주님의 양 떼를 지키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이루시는 놀라운 일들을 지키는 분들입니다. 지키는 것은 특별히 주교에게 맡겨진 임무의 하나로, 곧 하느님의 백성을 돌보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형제 주교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지키는 임무의 두 가지 중심 측면을 성찰해 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기억의 지킴이가 되는 것, 그리고 희망의 지킴이가 되는 것입니다.
 
기억의 지킴이가 되는 것. 윤지충 바오로와 그 동료들의 시복은 순교자들이 뿌린 씨앗으로 이 땅에서 은총의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기회입니다. 여러분은 순교자들의 후손이고, 그리스도 신앙을 영웅적으로 증언한 그 증거의 상속자들입니다. 또한 평신도들에게서 시작되어 여러 세대에 걸친 그들의 충실성과 끊임없는 노고로 크게 자라난, 매우 비범한 전통의 상속자들입니다. 그들은 성직주의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평신도였고, 그들 스스로 개척해 나갔습니다! 한국 교회의 역사가 하느님의 말씀과 직접 만나 시작되었다는 것은 뜻이 깊습니다. 그리스도의 메시지에는 아름다움과 진실성이 있어서, 복음과 복음의 요구, 곧 회개, 내적 쇄신, 사랑의 삶에 대한 요구가 이벽과 첫 세대의 양반 원로들을 감동시켰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바로 그 메시지에, 그 순수함에, 거울을 보듯이 자신을 비추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
 
한국 땅에 뿌려진 복음의 비옥함과 여러분의 신앙 선조들이 물려준 위대한 유산은, 오늘날 활기찬 본당 사목구와 교회 단체들의 번창에서, 탄탄한 교리교육 과정에서, 젊은이들과 가톨릭 학교, 신학교와 대학교에 대한 사목적 관심에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국가의 정신적 문화적 생활에 대한 역할과 선교에 관한 힘찬 열정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선교지였던 한국은 이제 선교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보편 교회는 여러분이 세계에 파견한 수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을 통하여 계속해서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기억의 지킴이가 되는 것은 과거의 은총을 기억하고 고이 간직하는 것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그 기억으로부터 영적인 자산을 꺼내어, 앞을 내다보는 지혜와 결단으로 미래의 희망과 약속과 도전을 직시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잘 아시듯이, 한국 교회의 삶과 사명은 궁극적으로 외적, 양적, 제도적인 잣대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오히려, 분명한 복음의 빛과 그 부르심에 비추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라는 회개의 촉구에 따라 판단하여야 합니다. 기억의 지킴이가 되는 것이란, 성장시켜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1코린 3,6 참조) 깨닫고, 동시에 성장은 과거처럼 현재에도 고난을 이겨내며 끊임없이 일하는 그러한 노고의 열매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순교자들과 지난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기억은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이상화되거나 “승리에 도취”된 기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회개하라고 촉구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지 않고 과거만 바라본다면, 우리가 앞으로 길을 나아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의 영적 진전을 가로막거나 실제로 멈추게 하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기억의 지킴이가 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여러분은 또한 희망의 지킴이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의 복음이 가져다주는 희망, 순교자들을 감격시킨 그 희망의 지킴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희망을 세상에 선포하라는 초대를 받았습니다. 물질적인 번영 속에서도 어떤 다른 것, 어떤 더 큰 것, 어떤 진정하고 충만한 것을 찾고 있는 세상에 이 희망을 선포하여야 합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형제 사제들은 여러분의 성화 직무를 통하여 이 희망을 제시하십시오. 이 성화 직무는 신자들을 전례와 성사 안에 있는 은총의 샘으로 이끌어 줄 뿐만 아니라,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라는(필리 3,14 참조)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행동하도록 끊임없이 재촉합니다. 여러분은 교회의 친교 안에서 성덕의 불꽃, 형제적 사랑의 불꽃, 선교 열정의 불꽃이 타오르게 함으로써 이 희망을 지킵니다. 이러한 까닭에, 저는 여러분이 언제나 여러분의 사제들 곁에 머무르도록 부탁합니다. 날마다 일하고 성덕을 추구하며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는 그들 곁에서 용기를 북돋아 주십시오. 하느님의 백성을 섬기는 그들의 아낌없는 봉사에 감사를 드린다고, 저의 사랑에 넘치는 인사를 전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사제들 곁에 머무르십시오. 당부합니다. 사제들 곁에 가까이 머무르십시오. 사제들이 주교를 자주 만날 수 있게 하십시오. 형제로서 또한 아버지로서 주교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 사제들은 사목 생활의 많은 순간에 그것을 필요로 합니다. 주교가 사제들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는 안 됩니다. 더군다나 사제들을 멀리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저의 고향에서 몇몇 사제들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주교님께 전화해서 면담 신청을 했고, 석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답이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형제 주교님, 만일 오늘 한 사제가 주교님께 면담 신청을 하는 전화를 했다면, 오늘이나 내일 곧장 그 사제에게 전화하십시오. 만약 만나 줄 시간이 없다면, 이렇게 말하십시오. “지금은 이러이러한 일 때문에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신부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저를 마음껏 이용하십시오.” 그렇지만 아버지의 대답을 즉시 들려주십시오. 제발, 여러분의 사제들에게서 멀어지지 마십시오.
 
선교하는 교회, 세상을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가는 교회, 특히 이 시대 사회의 변두리로 나아가는 교회가 되라는 도전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모든 지체를 받아들이고 그 지체 하나 하나와 동화되는 데에 “영적인 맛”을 들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268항 참조).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공동체는 어린이들과 노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노인들의 기억과 지혜와 경험, 그리고 젊은이들의 열망을 외면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희망의 지킴이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를 위하여 젊은이들의 교육을 특별히 배려하여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대학교도 중요하지만 대학교만이 아니라 초등학교를 비롯하여 모든 단계의 가톨릭 학교가 지닌 근본 사명의 수행을 뒷받침해 주십시오. 거기에서 젊은이들의 정신과 마음이 하느님과 그분의 교회에 대한 사랑 안에서 자라나고, 또 좋은 것, 참된 것, 아름다운 것 안에서 자라나서, 그들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정직한 시민이 될 수 있게 해주십시오.
 
희망의 지킴이가 된다는 것은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으며, 특히 난민들과 이민들, 사회의 변두리에서 사는 사람들과 연대를 실행하여, 한국 교회의 예언자적 증거가 끊임없이 명백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관심은 구체적인 자선 활동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 그것도 필요한 것이지만 ― 사회, 직업, 교육 수준의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서도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사업적인 차원으로만 축소시키고, 모든 사람이 반드시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 한 인간으로 성장할 권리 - 자신의 인격과 창의력과 문화를 존엄하게 표현하여야 할 필요성을 잊어버리는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연대는 복음의 중심에 있고, 그리스도인 생활의 필수 요소로 여겨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연대는 교회의 풍요한 유산인 사회 교리를 바탕으로 한 강론과 교리 교육을 통하여 신자들의 정신과 마음에 스며들어야 하며, 교회 생활의 모든 측면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교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라는 사도 시대의 이상은 여러분 나라의 첫 신앙 공동체에서 그 생생한 표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상이 미래를 향해 순례하는 한국 교회가 걸어갈 길에 계속 귀감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얼굴이 그 무엇보다도 먼저 사랑의 얼굴일 때에, 당신 신비체의 친교 안에서 언제나 거룩한 사랑으로 불타오르는 예수님의 마음에 늘 더 많은 젊은이들이 이끌려 올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가난한 이들이 복음의 중심에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또한 복음의 시작과 끝에도 가난한 이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오셨다고) 나자렛 회당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25장에서 마지막 날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 우리 모두가 심판 받을 때 적용될 “규범”을 알려주십니다. 거기에도 가난한 이들이 있습니다. 번영의 시기에 오는 위험, 유혹이 있습니다. 위험이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한갓 “사교 모임”이 되는 것입니다. 곧 신비적 측면을 잃고 하느님의 신비를 거행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그러한 공동체는 영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이며, 그리스도교적인 가치를 지닌 조직이지만, 예언자적인 누룩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난한 이들이 교회에서 할 일은 없어지고 맙니다. 이것은 역사 안에서 개별 교회와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수없이 겪어 온 유혹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중산층의 공동체가 되어, 가난한 이들이 교회 안에서 수치심을 느끼고 그 안에 들어가기를 부끄러워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또한 정신적 웰빙, 사목적 웰빙에 대한 유혹입니다. 곧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아니라 부자들을 위한 부유한 교회, 또는 잘사는 자들을 위한 중산층의 교회가 되려는 유혹입니다. 이는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이는 맨 처음부터 시작되었던 일입니다. 바오로는 코린토인들을 꾸짖어야만 하였고(1코린 11,17), 야고보 사도는 더욱 강하고 더욱 분명하게 그들 부유한 공동체들, 부자들을 위한 부유한 교회들을 꾸짖어야만 하였습니다(야고 2,1-7). 그들은 가난한 이들을 쫓아내지는 않지만, 가난한 이들이 감히 교회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게, 또 제 집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도 없게 하는 그런 방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번영에 대한 유혹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일을 잘 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러분을 꾸짖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믿음 안에서 제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야 할 형제로서 여러분에게 말씀 드립니다. 주의하십시오. 여러분의 교회는 번영하는 교회이고, 선교하는 훌륭한 교회이고, 커다란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악마가 가라지를 심지 못하도록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바로 교회의 예언자적 구조에서 가난한 이들을 제거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마십시오. 부자들을 위한 부유한 교회, 하나의 웰빙 교회 …… 그런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번영의 신학”에 이르렀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안 됩니다. 그저 그런 쓸모없는 교회가 되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예언자적인 복음의 증거는 한국 교회에 특별한 도전들을 제기합니다. 한국 교회가, 번영하였으나 또한 매우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인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살고 일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목자들은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준보다도 기업 사회에서 비롯된 능률적인 운영, 기획, 조직의 모델들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성공과 권력이라는 세속적 기준을 따르는 생활양식과 사고방식까지도 받아들이려는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이 세상의 지혜를 판단할 수 있는 힘을 잃어 헛되게 된다면, 우리는 불행할 것입니다! (1코린 1,17 참조) 여러분과 여러분의 형제 사제들에게 권고합니다. 그러한 온갖 유혹을 물리치십시오. 성령을 질식시키고, 회개를 무사안일로 대체하고, 마침내 모든 선교 열정을 소멸시켜 버리는 그러한 정신적 사목적 세속성에서 하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를 빕니다(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93-97항 참조).
 
사랑하는 형제 주교 여러분, 여러분이 하시는 모든 일에 감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기억과 희망의 지킴이가 되는 여러분의 사명에 관한 이러한 묵상으로, 저는 한국 신자들의 일치와 성덕과 열정을 증진하려고 노력하시는 여러분에게 용기를 북돋아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기억과 희망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미래를 향해 이끌어 갑니다. 제 기도 안에서 여러분을 모두 기억하겠습니다. 언제나 하느님 은총의 힘에 의지하십시오. “주님은 성실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성실하지 않더라도, 주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고 여러분을 악에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2테살 3,3). 순교자들이 씨앗을 뿌리고 가톨릭 신자들이 대대로 물을 주어, 이 나라와 세상의 미래를 위한 약속으로서 여러분에게 전해진 신앙이,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기도로 이 땅에서 활짝 피어나기를 빕니다. 여러분에게, 그리고 여러분의 사목과 보호에 맡겨진 모든 이들에게 마음을 다하여 저의 강복을 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부탁 드립니다. 부디,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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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그레고리오 16세의 조선교구설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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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그레고리오 16세의 조선교구설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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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그레고리오 16세의 조선교구설정문과 동시에 새로 임명된 초대 조선교구장 소주교(Brughiere)에게 보내신 서간문. 이 서간문에서 교황은 성직자없이  평신도들이 간청하는 애절한 처지를 밝히시면서, 그동안 교회는 조선교우들이 순교하는 동안 제대로 돌보지 못함을 직무유기로 언급할 정도였으며, 전 세계 모든 교구설정은 기존 교구장의 추천이나 동의가 전제되는데, 조선교구 설정은 평신도들의 간청에 의한 것임을 언급하고 있는, 유일한 경우다. 

 
MEETING WITH THE BISHOPS OF KOREA
ADDRESS OF POPE FRANCIS
 
Korean Episcopal Conference (Seoul)
Thursday, 14 August 2014
  Video
  
I thank Bishop Peter U-il Kang for his words of fraternal welcome on your behalf. It is a blessing for me to be here and to witness at first hand the vibrant life of the Church in Korea. As pastors, you are responsible for guarding the Lord’s flock. You are guardians of the wondrous works which he accomplishes in his people. Guarding is one of the tasks specifically entrusted to the bishop: looking after God’s people. Today I would like to reflect with you as a brother bishop on two central aspects of the task of guarding God’s people in this country: to be guardians of memory and to be guardians of hope.
 
To be guardians of memory. The beatification of Paul Yun Ji-chung and his companions is an occasion for us to thank the Lord, who from the seeds sown by the martyrs has brought forth an abundant harvest of grace in this land. You are the children of the martyrs, heirs to their heroic witness of faith in Christ. You are also heirs to an impressive tradition which began, and largely grew, through the fidelity, perseverance and work of generations of lay persons. They were not tempted by clericalism: they were laity and they moved ahead on their own. It is significant that the history of the Church in Korea began with a direct encounter with the word of God. It was the intrinsic beauty and integrity of the Christian message – the Gospel and its summons to conversion, interior renewal and a life of charity – that spoke to Yi Byeok and the noble elders of the first generation; and it is to that message, in its purity, that the Church in Korea looks, as if in a mirror, to find her truest self.
 
The fruitfulness of the Gospel on Korean soil, and the great legacy handed down from your forefathers in the faith, can be seen today in the flowering of active parishes and ecclesial movements, in solid programs of catechesis and outreach to young people, and in the Catholic schools, seminaries and universities. The Church in Korea is esteemed for its role in the spiritual and cultural life of the nation and its strong missionary impulse. From being a land of mission, yours has now become a land of missionaries; and the universal Church continues to benefit from the many priests and religious whom you have sent forth.
 
Being guardians of memory means more than remembering and treasuring the graces of the past; it also means drawing from them the spiritual resources to confront with vision and determination the hopes, the promise and the challenges of the future. As you yourselves have noted, the life and mission of the Church in Korea are not ultimately measured in external, quantitative and institutional terms; rather, they must be judged in the clear light of the Gospel and its call to conversion to the person of Jesus Christ. To be guardians of memory means realizing that while the growth is from God (cf. 1 Cor 3:6), it is also the fruit of quiet and persevering labor, past and present. Our memory of the martyrs and past generations of Christians must be one that is realistic, not idealized and not “triumphalistic”. Looking to the past without hearing God’s call to conversion in the present will not help us move forward; instead, it will only hold us back and even halt our spiritual progress.
 
In addition to being guardians of memory, dear brothers, you are also called to be guardians of hope: the hope held out by the Gospel of God’s grace and mercy in Jesus Christ, the hope which inspired the martyrs. It is this hope which we are challenged to proclaim to a world that, for all its material prosperity, is seeking something more, something greater, something authentic and fulfilling. You and your brother priests offer this hope by your ministry of sanctification, which not only leads the faithful to the sources of grace in the liturgy and the sacraments, but also constantly urges them to press forward in response to the upward call of God (cf. Phil 3:14). You guard this hope by keeping alive the flame of holiness, fraternal charity and missionary zeal within the Church’s communion. For this reason, I ask you to remain ever close to your priests, encouraging them in their daily labors, their pursuit of sanctity and their proclamation of the Gospel of salvation. I ask you to convey to them my affectionate greeting and my gratitude for their dedicated service to God’s people. I urge you to remain close to your priests. Close, so that they can see their bishop often. This closeness of the bishop is not only fraternal but also paternal: as they carry our their pastoral ministry, priests often need it. Bishops must not be distant from their priests, or worse, unapproachable. I say this with a heavy heart. Where I come from, some priests would tell me: “I’ve called the bishop, I’ve asked to meet him; yet three months have gone by and I have still not received an answer”. Brothers, if a priest phones you today and asks to see you, call him back immediately, today or tomorrow. If you don’t have time to see him, tell him: “I can’t meet you because of this, that and or the other thing, but I wanted to call you and I am here for you”. But let them hear their father’s response, as quickly as possible. Please, do not be distant from your priests.
 
If we accept the challenge of being a missionary Church, a Church which constantly goes forth to the world and, especially, to the peripheries of contemporary society, we will need to foster that “spiritual taste” which enables us to embrace and identify with each member of Christ’s body (cf. Evangelii Gaudium, 268). Here particular care and concern needs to be shown for the children and the elderly in our communities. How can we be guardians of hope if we neglect the memory, the wisdom and the experience of the elderly, and the aspirations of our young? In this regard, I would ask you to be concerned in a special way for the education of children, supporting the indispensable mission not only of the universities, important as they are, but also Catholic schools at every level, beginning with elementary schools, where young minds and hearts are shaped in love for the Lord and his Church, in the good, the true and the beautiful, and where children learn to be good Christians and upright citizens.
 
Being guardians of hope also entails ensuring that the prophetic witness of the Church in Korea remains evident in its concern for the poor and in its programs of outreach, particularly to refugees and migrants and those living on the margins of society. This concern should be seen not only in concrete charitable initiatives, which are necessary, but also in the ongoing work of social, occupational and educational promotion. We can risk reducing our work with those in need to its institutional dimension alone, while overlooking each individual’s need to grow as a person – their right to grow as a person – and to express in a worthy manner his or her own personality, creativity and culture. Solidarity with the poor is at the heart of the Gospel; it has to be seen as an essential element of the Christian life; through preaching and catechesis grounded in the rich patrimony of the Church’s social teaching, it must penetrate the hearts and minds of the faithful and be reflected in every aspect of ecclesial life. The apostolic ideal of a Church of and for the poor, a poor Church for the poor, found eloquent expression in the first Christian communities of your nation. I pray that this ideal will continue to shape the pilgrim path of the Church in Korea as she looks to the future. I am convinced that if the face of the Church is first and foremost a face of love, more and more young people will be drawn to the heart of Jesus ever aflame with divine love in the communion of his mystical body.
 
I have said that the poor are at the heart of the Gospel; they are present there from beginning to end. In the synagogue at Nazareth, Jesus made this clear at the outset of his ministry. And when in Matthew 25 he speaks of the latter days, and reveals the criterion by which we will all be judged, there too we find the poor. There is a danger, a temptation which arises in times of prosperity: it is the danger that the Christian community becomes just another “part of society”, losing its mystical dimension, losing its ability to celebrate the Mystery and instead becoming a spiritual organization, Christian and with Christian values, but lacking the leaven of prophecy. When this happens, the poor no longer have their proper role in the Church. This is a temptation from which particular Churches, Christian communities, have suffered greatly over the centuries; in some cases they become so middle class that the poor even feel ashamed to be a part of them. It is the temptation of spiritual “prosperity”, pastoral prosperity. No longer is it a poor Church for the poor but rather a rich Church for the rich, or a middle class Church for the well-to-do. Nor is this anything new: the temptation was there from the beginning. Paul had to rebuke the Corinthians in his First Letter (11:17), while the Apostle James was even more severe and explicit (2:1-7): he had to rebuke these affluent communities, affluent Churches for affluent people. They were not excluding the poor, but the way they were living made the poor reluctant to enter, they did not feel at home. This is the temptation of prosperity. I am not admonishing you because I know that you are doing good work. As a brother, however, who has the duty to confirm his brethren in the faith, I am telling you: be careful, because yours is a Church which is prospering, a great missionary Church, a great Church. The devil must not be allowed to sow these weeds, this temptation to remove the poor from very prophetic structure of the Church and to make you become an affluent Church for the affluent, a Church of the well-to do – perhaps not to the point of developing a “theology of prosperity” – but a Church of mediocrity.
 
Dear brothers, a prophetic witness to the Gospel presents particular challenges to the Church in Korea, since she carries out her life and ministry amid a prosperous, yet increasingly secularized and materialistic society. In such circumstances it is tempting for pastoral ministers to adopt not only effective models of management, planning and organization drawn from the business world, but also a lifestyle and mentality guided more by worldly criteria of success, and indeed power, than by the criteria which Jesus sets out in the Gospel. Woe to us if the cross is emptied of its power to judge the wisdom of this world (cf. 1 Cor 1:17)! I urge you and your brother priests to reject this temptation in all its forms. May we be saved from that spiritual and pastoral worldliness which stifles the Spirit, replaces conversion by complacency, and, in the process, dissipates all missionary fervor (cf. Evangelii Gaudium, 93-97)!
 
Dear brother Bishops, thank you for all that you do. Thank you! With these reflections on your role as guardians of memory and of hope, I want to encourage you in your efforts to build up the faithful in Korea in unity, holiness and zeal. Memory and hope inspire us and guide us toward the future. I remember all of you in my prayers and I urge you constantly to trust in the power of God’s grace. Never forget: “The Lord is faithful”. We are not, but he is. “He will strengthen you and guard you from the evil one” (2 Thess 3:3). May the prayers of Mary, Mother of the Church, bring to full flower in this land the seeds planted by the martyrs, watered by generations of faithful Catholics, and handed down to you as a pledge for the future of your country and of our world. To you, and to all entrusted to your pastoral care and keeping, I cordially impart my blessing and I ask you, please, to pray for me.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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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GEGNUNG MIT DEN BISCHÖFEN KOREAS
ANSPRACHE VON PAPST FRANZISKUS
Koreanische Bischofskonferenz (Seoul)
Donnerstag, 14. August 2014
 
Ich danke Bischof Peter U-il Kang für seinen brüderlichen Willkommensgruß in eurem Namen. Es ist ein Segen für mich, hier zu sein und das dynamische Leben der Kirche in Korea aus erster Hand mitzuerleben. Als Hirten habt ihr die Verantwortung, die Herde des Herrn zu hüten. Ihr seid Hüter der wunderbaren Taten, die er in seinem Volk vollbringt. Hüten ist eine der Aufgaben, die speziell dem Bischof übertragen sind, nämlich sich um das Volk Gottes zu kümmern. Heute möchte ich als Bruder im Bischofsamt mit euch über zwei zentrale Aspekte der Aufgabe, in diesem Land das Gottesvolk zu hüten, nachdenken: Hüter des Gedächtnisses und Hüter der Hoffnung zu sein.
Hüter des Gedächtnisses sein. Die Seligsprechung von Paul Yun Ji-chung und seiner Gefährten ist für uns eine Gelegenheit, dem Herrn zu danken, der aus dem von den Märtyrern ausgestreuten Samen in diesem Land eine reiche Ernte der Gnade hat hervorgehen lassen. Ihr seid die Kinder der Märtyrer, Erben ihres heroischen Glaubenszeugnisses für Christus. Ihr seid auch Erben einer eindrucksvollen Tradition, die in der Treue, der Ausdauer und der Arbeit von Generationen von Laien ihren Anfang nahm und sich beträchtlich ausbreitete. Diese waren nicht der Versuchung des Klerikalismus ausgesetzt: Sie waren Laien und gingen allein voran! Es ist bedeutsam, dass die Geschichte der Kirche in Korea mit einer direkten Begegnung mit dem Wort Gottes begann. Es war die der christlichen Botschaft innewohnende Schönheit und Lauterkeit – das Evangelium und seine Aufrufe zu Umkehr, innerer Erneuerung und einem Leben der Nächstenliebe – die Yi Byeok und die ehrwürdigen Ahnen der ersten Generation ansprach; und auf diese Botschaft in ihrer Reinheit schaut die Kirche in Korea wie in einen Spiegel, um ihr innerstes Wesen zu finden.
Die Fruchtbarkeit des Evangeliums auf koreanischem Boden und das reiche Erbe, das eure Vorfahren im Glauben weitergegeben haben, zeigt sich heute in der Blüte aktiver Pfarreien und kirchlicher Bewegungen, in soliden Programmen für Katechese und Jugendarbeit sowie in den katholischen Schulen, Seminaren und Universitäten. Die Kirche in Korea genießt hohes Ansehen aufgrund ihrer Rolle im geistigen und kulturellen Leben der Nation und ihres starken missionarischen Impulses. Von einem Missionsland ist euer Land nun zu einem Land der Missionare geworden; und die Weltkirche profitiert von den vielen Priestern und Ordensleuten, die ihr ausgesandt habt.
Hüter des Gedächtnisses zu sein bedeutet mehr, als die Gnadenerweise der Vergangenheit in Erinnerung zu bewahren und zu schätzen; es bedeutet auch, aus ihnen das geistliche Kapital zu ziehen, um mit Weitblick und Entschiedenheit den Hoffnungen, den Erwartungen und den Herausforderungen der Zukunft zu begegnen. Wie ihr selbst festgestellt habt, liegt der Maßstab für das Leben und die Mission der Kirche in Korea letztlich nicht in äußeren, quantitativen und institutionellen Bedingungen; sie müssen vielmehr im klaren Licht des Evangeliums und seinem Ruf zur Umkehr zur Person Jesu Christi beurteilt werden. Hüter des Gedächtnisses sein bedeutet einzusehen, dass das Wachstum zwar von Gott kommt (vgl. 1 Kor 3,6), zugleich aber Frucht ruhiger und ausdauernder vergangener wie gegenwärtiger Arbeit ist. Unsere Erinnerung an die Märtyrer und die vergangenen Generationen der Christen muss eine realistische, nicht eine idealisierende und nicht eine „triumphalistische“ sein. In die Vergangenheit zu schauen, ohne auf Gottes Ruf zur Umkehr in der Gegenwart zu hören, wird uns nicht voranbringen; es wird uns stattdessen nur zurückhalten und sogar unseren geistlichen Fortschritt blockieren.
Außer Hüter des Gedächtnisses zu sein, seid ihr, liebe Brüder, auch berufen, Hüter der Hoffnung zu sein: Hoffnung, die aus dem Evangelium von Gottes Gnade und Barmherzigkeit in Jesus Christus hervorgeht, die Hoffnung, welche die Märtyrer beseelte. Diese Hoffnung einer Welt zu verkünden, die bei all ihrem materiellen Wohlstand etwas sucht, das mehr ist, etwas Größeres, etwas Echtes und Erfüllendes: Das ist unsere Herausforderung. Ihr und eure Mitbrüder im priesterlichen Dienst bietet diese Hoffnung durch euren Dienst der Heiligung, der die Gläubigen nicht nur zu den Quellen der Gnade in der Liturgie und den Sakramenten führt, sondern sie auch ständig antreibt, vorwärts zu drängen als Antwort auf die himmlische Berufung, die Gott uns schenkt (vgl. Phil 3,14). Ihr hütet diese Hoffnung, indem ihr die Flamme der Heiligkeit, der Bruderliebe und des missionarischen Eifers in der kirchlichen Gemeinschaft am Leben erhaltet. Aus diesem Grund bitte ich euch, euren Priestern immer nahe zu sein, sie zu ermutigen in ihren täglichen Mühen, ihrem Streben nach Heiligkeit und ihrer Verkündigung der Frohen Botschaft vom Heil. Ich bitte euch, ihnen meine herzlichen Grüße und meinen Dank zu überbringen für ihren engagierten Dienst am Volk Gottes. Seid euren Priestern nahe, bitte! Nähe, es braucht Nähe zu den Priestern, dass sie ihren Bischof treffen können. Diese brüderliche und auch väterliche Nähe des Bischofs – die Priester brauchen sie in vielen Augenblicken ihres Lebens als Seelsorger. Nicht Bischöfe, die fern sind, oder schlimmer noch, die sich von ihren Priestern entfernen. Es ist mir schmerzlich, das zu sagen. In meinem Land habe ich oft Priester gehört, die zu mir sagten: „Ich habe den Bischof angerufen und um Audienz gebeten; drei Monate sind vergangen, und ich habe noch keine Antwort.“ – Aber hör einmal, Bruder, wenn ein Priester dich heute anruft, um dich um eine Audienz zu bitten, dann rufe sofort zurück, heute noch oder morgen. Und wenn du keine Zeit hast, ihn zu empfangen, sag ihm: „Ich kann nicht, weil ich das und das und das zu tun habe. Aber ich wollte dich hören und stehe dir zur Verfügung.“ Dass sie doch die Antwort des Vaters hören, und zwar sofort. Bitte, entfernt euch nicht von euren Priestern!
Wenn wir die Herausforderung annehmen, eine missionarische Kirche zu sein, eine Kirche, die ständig hinausgeht in die Welt und besonders an die Peripherien der heutigen Gesellschaft, müssen wir jenes „geistliche Wohlgefallen“ fördern, das uns fähig macht, jedes Glied des Leibes Christi zu umarmen und uns mit ihm zu identifizieren (vgl. Evangelii gaudium, 268). Hier gilt es, den Kindern und den älteren Menschen in unseren Gemeinden besondere Zuwendung und Aufmerksamkeit entgegenzubringen. Wie können wir Hüter der Hoffnung sein, wenn wir das Gedächtnis, die Weisheit und die Erfahrung der alten Menschen und die Sehnsüchte unserer Jugendlichen ignorieren? In diesem Zusammenhang möchte ich euch bitten, euch in besonderer Weise um die Erziehung der Kinder zu kümmern, indem ihr die unverzichtbare Aufgabe nicht nur der Universitäten – die wichtig sind –, sondern auch katholischer Schulen auf allen Stufen unterstützt, angefangen von den Grundschulen, wo Geist und Herz der Kinder in der Liebe zum Herrn und seiner Kirche, im Guten, Wahren und Schönen geformt werden und wo Kinder lernen, gute Christen und rechtschaffene Bürger zu sein.
Hüter der Hoffnung zu sein bedingt auch, dafür zu sorgen, dass das prophetische Zeugnis der Kirche in Korea deutlich sichtbar bleibt in ihrer Sorge um die Armen und in ihren Hilfsprogrammen besonders für Flüchtlinge und Migranten sowie für die, die am Rande der Gesellschaft leben. Dieses Anliegen sollte sich nicht nur in konkreten karitativen Initiativen zeigen, die notwendig sind, sondern auch im fortlaufenden Einsatz bei der Förderung auf sozialer und beruflicher Ebene sowie im Bildungswesen. Wir können Gefahr laufen, unsere Arbeit mit den Notleidenden allein auf ihre institutionelle Dimension zu reduzieren und dabei über die individuellen Bedürfnisse jedes Einzelnen, als Person zu wachsen, über das Recht, das er hat, als Person zu wachsen und auf würdige Weise die eigene Persönlichkeit, Kreativität und Kultur zum Ausdruck zu bringen, hinwegzusehen. Die Solidarität mit den Armen steht im Zentrum des Evangeliums; sie muss als ein wesentliches Element des christlichen Lebens gesehen werden; durch Predigt und Katechese auf der Grundlage des reichen Erbes der Soziallehre der Kirche muss sie in Herz und Verstand der Gläubigen eindringen und sich in allen Aspekten kirchlichen Lebens widerspiegeln. Das apostolische Ideal einer Kirche der Armen und für die Armen – einer armen Kirche für die Armen – kam in den ersten christlichen Gemeinden eures Landes deutlich zum Ausdruck. Ich bete, dass dieses Ideal den Pilgerweg der Kirche in Korea in ihrem Blick auf die Zukunft weiterhin prägen möge. Ich bin überzeugt: Wenn das Gesicht der Kirche zuerst und vor allem ein Gesicht der Liebe ist, werden immer mehr junge Menschen zum stets von göttlicher Liebe brennenden Herzen Jesu in der Gemeinschaft seines mystischen Leibes hingezogen werden.
Ich habe gesagt, dass die Armen im Zentrum des Evangeliums stehen; sie stehen auch am Anfang und am Ende. Zu Beginn seines apostolischen Lebens spricht Jesus in der Synagoge von Nazareth deutliche Worte. Und als über den Letzten Tag redet und uns jenes „Protokoll“ bekannt macht, nach dem wir alle gerichtet werden – Matthäus 25 –, sind dort ebenfalls di Armen. Es besteht eine Gefahr, es gibt eine Versuchung, die in Zeiten des Aufschwungs auftaucht: Es ist die Gefahr, dass die christliche Gemeinde sich „sozialisiert“, das heißt, dass ihr jene mystische Dimension abhandenkommt, dass sie die Fähigkeit verliert, das Mysterium zu feiern, und sich in eine geistliche, christliche Organisation verwandelt, mit christlichen Werten, aber ohne prophetischen Sauerteig. Dort ist die Funktion verloren gegangen, die die Armen in der Kirche haben. Das ist eine Versuchung, unter der die Teilkirchen, die christlichen Gemeinden in der Geschichte sehr gelitten haben. Und das bis zu dem Punkt, sich in eine Mittelklasse-Gemeinde zu verwandeln, in der die Armen sich schließlich sogar schämen: Sie schämen sich einzutreten. Das ist die Versuchung des geistlichen Wohlstands, des pastoralen Wohlstands. Es ist nicht eine arme Kirche für die Armen, sondern eine reiche Kirche für die Reichen oder eine Mittelklasse-Kirche für die Wohlhabenden. Und das ist nichts Neues: Es begann gleich zu Anfang. Paulus muss den Korinthern in seinem ersten Brief an sie – im 11. Kapitel, Vers 17 – Vorwürfe machen; und noch stärker und deutlicher der Apostel Jakobus in den Versen 1 bis 7 im zweiten Kapitel seines Briefes: Er muss diese wohlhabenden Gemeinden, diese wohlhabenden Kirchen für die Wohlhabenden rügen. Man jagt die Armen nicht fort, aber man lebt so, dass sie nicht wagen einzutreten, dass sie sich nicht zu Hause fühlen. Das ist eine Versuchung der Prosperität. Ich mache euch keine Vorwürfe, denn ich weiß, dass ihr gute Arbeit leistet. Doch als Bruder, der seine Brüder im Glauben stärken muss, sage ich euch: Passt auf, denn eure Kirche ist eine Kirche im Aufschwung, es ist eine große missionarische Kirche, es ist eine große Kirche. Möge der Teufel nicht dieses Unkraut säen, diese Versuchung, die Armen aus der prophetischen Struktur der Kirche zu entfernen, und euch zu einer wohlhabenden Kirche für die Wohlhabenden werden lassen, zu einer Wohlstandskirche… ich sage nicht: bis hin zu einer „Theologie der Prosperität“, nein, aber bis zur Mittelmäßigkeit.
Liebe Brüder, ein prophetisches Zeugnis für das Evangelium stellt für die Kirche in Korea eine besondere Herausforderung dar, da sie ihr Leben und ihren Dienst mitten in einer wohlhabenden, dabei zunehmend säkularisierten und materialistischen Gesellschaft vollzieht. Unter solchen Umständen ist es für die im pastoralen Dienst Tätigen eine Versuchung, nicht nur wirksame Modelle des Managements, der Planung und der Organisation aus der Geschäftswelt zu übernehmen, sondern auch einen Lebensstil und eine Mentalität, die mehr von weltlichen Kriterien des Erfolgs – und tatsächlich der Macht – geleitet sind, als von den Kriterien, die Jesus im Evangelium aufstellt. Weh uns, wenn das Kreuz um seine Kraft gebracht wird, über die Weisheit dieser Welt zu urteilen (vgl.1 Kor 1,17)! Ich bitte euch und eure Brüder im priesterlichen Dienst dringend, dieser Versuchung in all ihren Formen zu widerstehen. Mögen wir vor jener geistlichen und pastoralen Verweltlichung bewahrt werden, die den Heiligen Geist unterdrückt, Umkehr durch Selbstgefälligkeit ersetzt und dabei jeden missionarischen Eifer zerstreut (vgl. Evangelii gaudium, 93-97)!
Liebe Mitbrüder im Bischofsamt, danke für alles, was ihr tut: Danke! Mit diesen Gedanken über eure Rolle als Hüter des Gedächtnisses und der Hoffnung wollte ich euch in euren Bemühungen ermutigen, die Gläubigen in Korea in Einheit, Heiligkeit und Eifer aufzubauen. Gedächtnis und Hoffnung inspirieren uns und führen uns in die Zukunft. Ich gedenke euer aller in meinen Gebeten, und ich bitte euch inständig, auf die Kraft der Gnade Gottes zu vertrauen. Vergesst nicht: „Der Herr ist treu.“ Wir sind nicht treu, doch er ist treu! „Er wird euch Kraft geben und euch vor dem Bösen bewahren“ (2 Thess 3,3). Möge die Fürsprache Marias, der Mutter der Kirche, in diesem Land die Samen zu voller Blüte bringen, die von den Märtyrern ausgesät, von Generationen gläubiger Katholiken begossen und euch übergeben wurden als ein Pfand für die Zukunft eures Landes und unserer Welt. Euch und allen, die sich eurer pastoralen Sorge und Obhut anvertraut haben, erteile ich von Herzen meinen Segen und bitte euch, für mich zu beten. Danke..
 
 
RENCONTRE AVEC LES ÉVÊQUES DE CORÉE
 
DISCOURS DU PAPE FRANÇOIS
 
Conférence épiscopale coréenne (Séoul)
Jeudi 14 août 2014
 
 
Je remercie Mgr Peter U-il Kang pour ses mots de fraternelle bienvenue en votre nom. C’est une bénédiction pour moi d’être ici et de connaître personnellement la vitalité de l’Église en Corée. Comme pasteurs, vous avez à charge la garde du troupeau du Seigneur. Vous êtes les gardiens des merveilles qu’il accomplit dans son peuple. Garder, c’est l’une des tâches spécifiquement confiées à l’Évêque : prendre soin du peuple de Dieu. Aujourd’hui je voudrais réfléchir avec vous, comme frère dans l’épiscopat, sur deux aspects centraux de la garde du peuple de Dieu en ce pays : être gardiens de la mémoire et être gardiens de l’espérance.
 
Être gardiens de la mémoire. La béatification de Paul Yun Ji-chung et de ses compagnons est une occasion de remercier le Seigneur, qui, des semences jetées en terre par les martyrs, a fait jaillir une abondante récolte de grâce en cette terre. Vous êtes les descendants des martyrs, héritiers de leur héroïque témoignage de foi dans le Christ. Vous êtes aussi les héritiers d’une impressionnante tradition qui a commencé, et a largement grandi, grâce à la fidélité, à la persévérance et au travail de générations de laïcs. Ceux-ci n’avaient pas la tentation du cléricalisme : ils étaient des laïcs, ils allaient seuls de l’avant. Il est significatif que l’histoire de l’Église en Corée ait commencé par une rencontre directe avec la Parole de Dieu. Ce furent la beauté intrinsèque et l’intégrité du message chrétien – l’Évangile et son appel à la conversion, au renouvellement intérieur et à une vie de charité – qui ont impressionné Yi Byeok et les nobles anciens de la première génération ; c’est vers ce message, vers sa pureté, que l’Église en Corée regarde, comme dans un miroir, pour se découvrir authentiquement elle-même.
 
La fécondité de l’Évangile dans la terre coréenne, et son grand héritage transmis par vos ancêtres dans la foi, peuvent être vus aujourd’hui dans la floraison de paroisses actives et de mouvements ecclésiaux, dans de solides programmes de catéchèses, dans l’attention pastorale envers les jeunes et dans les écoles catholiques, dans les séminaires et dans les universités. L’Église en Corée est estimée pour son rôle dans la vie spirituelle et culturelle de la nation et pour sa forte impulsion missionnaire. De terre de mission, la Corée est devenue désormais une terre de missionnaires ; et l’Église universelle continue de bénéficier des nombreux prêtres et religieux que vous avez envoyés dans le monde.
 
Être gardiens de la mémoire signifie quelque chose de plus que se rappeler et mettre à profit les grâces du passé. Cela signifie aussi en tirer les ressources spirituelles pour affronter, avec clairvoyance et détermination, les espoirs, les promesses et les défis de l’avenir. Comme vous l’avez noté vous-mêmes, la vie et la mission de l’Église en Corée ne se mesurent pas, en dernier ressort, en termes extérieurs, quantitatifs et institutionnels ; elles doivent plutôt être jugées à la claire lumière de l’Évangile et de son appel à une conversion à la personne de Jésus Christ. Être gardiens de la mémoire signifie se rendre compte que la croissance vient de Dieu (cf. 1 Co 3, 6), et qu’en même temps c’est le fruit d’un travail patient et persévérant, dans le passé comme dans le présent. Notre mémoire des martyrs et des générations passées de chrétiens doit être réaliste, et non idéalisée ou ‘‘triomphaliste’’. Regarder vers le passé sans écouter l’appel de Dieu à la conversion dans le présent ne nous aidera pas à poursuivre le chemin ; au contraire, cela nous freinera et même arrêtera notre progrès spirituel.
 
Outre le fait d’être gardiens de la mémoire, chers frères, vous êtes aussi appelés à être gardiens de l’espérance : l’espérance offerte par l’Évangile de la grâce et de la miséricorde de Dieu en Jésus-Christ, cette espérance qui a inspiré les martyrs. C’est cette espérance que nous sommes appelés à proclamer à un monde qui, malgré sa prospérité matérielle, cherche quelque chose de plus, quelque chose de plus grand, quelque chose d’authentique et d’épanouissant. Avec vos frères prêtres, vous offrez cette espérance par votre ministère de sanctification, qui, non seulement conduit les fidèles aux sources de la grâce dans la liturgie et dans les sacrements, mais aussi les pousse constamment à agir en réponse à l’appel de Dieu à tendre vers en-haut (cf. Phil 3, 14). Vous veillez sur cette espérance en gardant vivante la flamme de la sainteté, de la charité fraternelle et du zèle missionnaire dans la communion ecclésiale. C’est pourquoi, je vous demande de rester toujours proches de vos prêtres, les encourageant dans leur travail quotidien, dans leur recherche de sainteté et dans la proclamation de l’Évangile du salut. Je vous demande de leur transmettre mon affectueux salut et ma gratitude pour leur service généreux en faveur du peuple de Dieu. Proches de vos prêtres, je vous en prie, proximité, proximité avec les prêtres. Qu’ils puissent rencontrer l’évêque. Cette proximité fraternelle de l’évêque, et aussi paternelle : ils en ont besoin à beaucoup de moments de leur vie pastorale. Ne soyez pas des évêques distants ou, pire, qui s’éloignent de leurs prêtres. Je le dis avec douleur. Dans mon pays, tant de fois j’ai entendu l’un ou l’autre prêtre qui me disait : ‘‘J’ai appelé l’évêque, j’ai demandé une audience ; trois mois se sont écoulés, je n’ai pas encore de réponse’’. Mais écoute, frère, si un prêtre aujourd’hui t’appelle pour te demander une audience, rappelle-le immédiatement, aujourd’hui ou demain. Si tu n’as pas de temps pour le recevoir, dis-le lui : ‘‘Je ne peux pas parce que j’ai ceci, ceci, ceci. Cependant je voulais t’écouter et je suis à ta disposition’’. Mais qu’ils sentent la réponse du père, immédiatement. S’il vous plaît, ne vous éloignez pas de vos prêtres.
 
Si nous acceptons le défi d’être une Église missionnaire, une Église constamment en sortie vers le monde et, spécialement, vers les périphéries de la société contemporaine, nous aurons besoin de développer ce ‘‘goût spirituel’’ qui nous rend capables d’accueillir et de nous identifier avec chaque membre du corps du Christ (cf. Evangelii gaudium, n. 268). En ce sens, une sollicitude particulière doit être montrée dans nos communautés à l’égard des enfants et des plus âgés. Comment pouvons-nous être des gardiens d’espérance si nous négligeons la mémoire, la sagesse et l’expérience des anciens et les aspirations des jeunes ? A ce sujet, je voudrais vous demander de prendre soin de façon spéciale de l’éducation des jeunes, en soutenant dans leur mission indispensable non seulement les universités, qui sont importantes, mais aussi les écoles catholiques de tout niveau, en commençant par les écoles élémentaires où les jeunes esprits et les cœurs sont formés à l’amour de Dieu et de son Église, au bien, au vrai et au beau, à être de bons chrétiens et d’honnêtes citoyens.
 
Être gardiens d’espérance implique aussi de s’assurer que le témoignage de l’Église en Corée continue à s’exprimer par sa sollicitude pour les pauvres et dans ses programmes de solidarité, particulièrement, pour les réfugiés et les migrants ainsi que pour les personnes qui vivent aux marges de la société. Cette sollicitude devrait se manifester non seulement dans les initiatives concrètes de charité, qui sont nécessaires, mais aussi dans le travail constant de promotion au niveau social, professionnel et éducatif. Nous risquons de réduire notre engagement au service des nécessiteux à sa seule dimension d’assistance, oubliant le besoin de chaque individu de croître comme personne – le droit qu’il a de croître comme personne – et de pouvoir exprimer d’une manière digne sa personnalité, sa créativité et sa culture. La solidarité avec les pauvres est au centre de l’Évangile ; elle doit être considérée comme un élément essentiel de la vie chrétienne : à travers la prédication et la catéchèse enracinées dans le riche patrimoine de la doctrine sociale de l’Église, elle doit pénétrer les cœurs et les esprits des fidèles et se refléter dans chaque aspect de la vie ecclésiale. L’idéal apostolique d’ ‘‘une Église de pauvres pour les pauvres’’, une Église pauvre pour les pauvres, a trouvé une éloquente expression dans les premières communautés chrétiennes de votre nation. Je souhaite que cet idéal continue de façonner le chemin de l’Église en Corée dans son pèlerinage vers l’avenir. Je suis convaincu que si le visage de l’Église est en premier lieu le visage de l’amour, toujours plus de jeunes seront attirés vers le cœur de Jésus toujours brûlant d’amour divin dans la communion de son Corps mystique.
 
J’ai dit que les pauvres sont au centre de l’Évangile ; ils sont aussi au début et à la fin. Jésus, dans la synagogue de Nazareth, parle clair, au début de sa vie apostolique. Et quand il parle du dernier jour et nous fait connaître le ‘‘protocole’’ sur lequel tous nous serons jugés – Mathieu 25 –, là aussi il y a les pauvres. Il a y un danger, il y a une tentation qui vient aux moments de prospérité : c’est le danger que la communauté chrétienne se ‘‘socialise’’, c’est-à-dire qu’elle perde cette dimension mystique, qu’elle perde la capacité de célébrer le Mystère et se transforme en une organisation spirituelle, chrétienne, avec des valeurs chrétiennes, mais sans levain prophétique. Là se perd la fonction qu’ont les pauvres dans l’Église. C’est là une tentation dont les Églises particulières, les communautés chrétiennes ont souffert beaucoup, dans l’histoire. Et ceci au point de se transformer en une communauté de classe moyenne, dans laquelle les pauvres arrivent à éprouver même de la honte : ils ont honte d’entrer. C’est la tentation du bien-être spirituel, du bien-être pastoral. Ce n’est pas une Église pauvre pour les pauvres, mais une Église riche pour les riches, ou une Église de classe moyenne pour les personnes aisées. Et cela n’est pas nouveau : cela a commencé dès les débuts. Paul doit réprimander les Corinthiens, dans la Première Lettre, chapitre 11, verset 17 ; et l’apôtre Jacques y va plus fort encore, et est plus explicite, dans son chapitre 2, du verset 1 au verset 7 : il doit réprimander ces communautés aisées, ces Églises aisées pour les personnes aisées. On ne chasse pas les pauvres mais l’on vit de telle manière qu’ils n’osent pas entrer, et qu’ils ne sentent pas chez eux. C’est là une tentation de la prospérité. Je ne vous réprimande pas, parce que je sais que vous travaillez bien. Mais comme frère qui doit confirmer dans la foi ses frères, je vous dis : soyez attentifs, parce que votre Église est dans la prospérité, c’est une grande Église missionnaire, c’est une grande Église. Que le diable ne sème pas cette ivraie, cette tentation d’ôter les pauvres de la structure prophétique même de l’Église et qu’il ne vous fasse devenir une Église aisée pour les personnes aisées, une Église du bien-être… je ne dis pas jusqu’au point d’arriver à la ‘‘théologie de la prospérité’’, non, mais dans la médiocrité.
 
Chers frères, un témoignage évangélique prophétique présente des défis particuliers pour l’Église en Corée, puisqu’elle vit et agit dans une société prospère, mais toujours plus sécularisée et matérialiste. En de telles circonstances, les agents pastoraux sont tentés d’adopter non seulement des modèles efficaces de gestion, de programmation et d’organisation issus du monde des affaires, mais aussi un style de vie et une mentalité guidés plus par des critères mondains de succès, voire de pouvoir, que par les critères énoncés par Jésus dans l’Évangile. Malheur à nous si la croix est vidée de son pouvoir de juger la sagesse de ce monde (cf. 1 Co 1, 17). Je vous exhorte ainsi que vos frères prêtres à rejeter cette tentation sous toutes ses formes. Puissions-nous être sauvés de cette mondanité spirituelle et pastorale, qui étouffe l’esprit, remplace la conversion par la complaisance, et finit par dissiper toute ferveur missionnaire (cf. Evangelii gaudium, nn. 93-97) !
 
Chers frères Évêques, merci pour tout ce que vous faites. Et avec ces réflexions sur votre mission comme gardiens de la mémoire et de l’espérance, j’ai voulu vous encourager dans vos efforts pour développer l’unité, la sainteté et le zèle des fidèles en Corée. Que la mémoire et l’espérance nous inspirent et nous guident vers l’avenir. Je me souviens de vous tous dans mes prières et je vous exhorte à vous confier toujours à la force de la grâce de Dieu : Ne l’oubliez pas : ‘‘Le Seigneur est fidèle’’. Nous, nous ne sommes pas fidèles, mais Lui, il est fidèle. ‘‘Il vous affermira et vous gardera du Mauvais (2 Th 3, 3). Puissent les prières de Marie, la Mère de l’Église, faire fleurir en cette terre les semences plantées par les martyrs, arrosées par des générations de fidèles catholiques, et transmises à vous comme promesse pour l’avenir du pays et du monde. À vous, ainsi qu’à tous ceux qui sont confiés à votre sollicitude pastorale et à votre garde, j’adresse de tout cœur ma Bénédiction, et je vous demande, s’il vous plaît, de prier pour moi. Mer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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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NTRO CON I VESCOVI DELLA COREA
 
DISCORSO DEL SANTO PADRE FRANCESCO
 
Conferenza Episcopale Coreana (Seoul)
Giovedì, 14 agosto 2014
 
Ringrazio il Vescovo Peter U-il Kang per le sue fraterne parole di benvenuto a nome vostro. È una benedizione per me essere qui e conoscere di persona la vita dinamica della Chiesa in Corea. A voi, come Pastori, spetta il compito di custodire il gregge del Signore. Siete i custodi delle meraviglie che Egli compie nel suo popolo. Custodire è uno dei compiti specificamente affidati al Vescovo: prendersi cura del popolo di Dio. Oggi vorrei riflettere con voi come fratello nell’episcopato su due aspetti centrali di tale custodia del popolo di Dio in questo Paese: essere custodi della memoria e essere custodi della speranza.
 
[T]
 
Essere custodi della memoria. La beatificazione di Paul Yun Ji-chung e dei suoi compagni è un’occasione per ringraziare il Signore che, dai semi sparsi dai martiri, ha fatto scaturire un abbondante raccolto di grazia in questa terra. Voi siete i discendenti dei martiri, eredi della loro eroica testimonianza di fede in Cristo. Siete inoltre eredi di una straordinaria tradizione che iniziò e crebbe largamente grazie alla fedeltà, alla perseveranza e al lavoro di generazioni di laici. Questi non avevano la tentazione del clericalismo: erano laici, andavano avanti da soli! È significativo che la storia della Chiesa in Corea abbia avuto inizio da un incontro diretto con la Parola di Dio. È stata la bellezza intrinseca e l’integrità del messaggio cristiano – il Vangelo e il suo appello alla conversione, al rinnovamento interiore e a una vita di carità – ad impressionare Yi Byeok e i nobili anziani della prima generazione; ed è a quel messaggio, alla sua purezza, che la Chiesa in Corea guarda come in uno specchio, per scoprire autenticamente sé stessa.
 
La fecondità del Vangelo in terra coreana e la grande eredità tramandata dai vostri antenati nella fede, oggi si possono riconoscere nel fiorire di parrocchie attive e di movimenti ecclesiali, in solidi programmi di catechesi, nell’attenzione pastorale verso i giovani e nelle scuole cattoliche, nei seminari e nelle università. La Chiesa in Corea è stimata per il suo ruolo nella vita spirituale e culturale della nazione e per il suo forte impulso missionario. Da terra di missione, la Corea è diventata oggi una terra di missionari; e la Chiesa universale continua a trarre beneficio dai tanti sacerdoti e religiosi che avete inviato nel mondo.
 
[T]
 
Essere custodi della memoria significa qualcosa di più che ricordare e fare tesoro delle grazie del passato. Significa anche trarne le risorse spirituali per affrontare con lungimiranza e determinazione le speranze, le promesse e le sfide del futuro. Come voi stessi avete notato, la vita e la missione della Chiesa in Corea non si misurano in definitiva in termini esteriori, quantitativi e istituzionali; piuttosto esse devono essere giudicate nella chiara luce del Vangelo e della sua chiamata ad una conversione alla persona di Gesù Cristo. Essere custodi della memoria significa rendersi conto che la crescita viene da Dio (cfr 1 Cor 3,6) e al tempo stesso è il frutto di un paziente e perseverante lavoro, nel passato come nel presente. La nostra memoria dei martiri e delle generazioni passate di cristiani deve essere realistica, non idealizzata o e non “trionfalistica”. Guardare al passato senza ascoltare la chiamata di Dio alla conversione nel presente non ci aiuterà a proseguire il cammino; al contrario frenerà o addirittura arresterà il nostro progresso spirituale.
 
[T]
 
Oltre ad essere custodi della memoria, cari fratelli, voi siete anche chiamati ad essere custodi della speranza: quella speranza offerta dal Vangelo della grazia e della misericordia di Dio in Gesù Cristo, quella speranza che ha ispirato i martiri. È questa speranza che siamo invitati a proclamare ad un mondo che, malgrado la sua prosperità materiale, cerca qualcosa di più, qualcosa di più grande, qualcosa di autentico e che dà pienezza. Voi e i vostri fratelli sacerdoti offrite questa speranza con il vostro ministero di santificazione, che non solo conduce i fedeli alle sorgenti della grazia nella liturgia e nei sacramenti, ma costantemente li spinge ad agire in risposta alla chiamata di Dio a tendere alla meta (cfr Fil 3,14). Voi custodite questa speranza mantenendo viva la fiamma della santità, della carità fraterna e dello zelo missionario nella comunione ecclesiale. Per questa ragione vi chiedo di rimanere sempre vicini ai vostri sacerdoti, incoraggiandoli nel loro lavoro quotidiano, nella loro ricerca di santità e nella proclamazione del Vangelo di salvezza. Vi chiedo di trasmettere loro il mio affettuoso saluto e la mia gratitudine per il generoso servizio in favore del popolo di Dio. Vicini ai vostri sacerdoti, mi raccomando, vicinanza, vicinanza ai sacerdoti. Che loro possano incontrare il vescovo. Questa vicinanza fraterna del vescovo, e anche paterna: ne hanno bisogno in tanti momenti della loro vita pastorale. Non vescovi lontani o, peggio, che si allontanano dai loro preti. Con dolore lo dico. Nella mia terra, tante volte ho sentito qualche sacerdote che mi diceva: “Ho chiamato il vescovo, ho chiesto udienza; sono passati tre mesi, ancora non ho risposta”. Ma senti, fratello, se un sacerdote oggi ti chiama per chiederti udienza, richiamalo subito, oggi o domani. Se tu non hai tempo per riceverlo, diglielo: “Non posso perché ho questo, questo, questo. Ma io volevo sentirti e sono a tua disposizione”. Ma che sentano la risposta del padre, subito. Per favore, non allontanatevi dai vostri sacerd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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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 noi accettiamo la sfida di essere una Chiesa missionaria, una Chiesa costantemente in uscita verso il mondo e in particolare verso le periferie della società contemporanea, avremo bisogno di sviluppare quel “gusto spirituale” che ci rende capaci di accogliere e di identificarci con ogni membro del Corpo di Cristo (cfr Esort. ap. Evangelii gaudium, 268). In questo senso una particolare sollecitudine chiede di essere mostrata nelle nostre comunità nei confronti dei bambini e dei più anziani. Come possiamo essere custodi di speranza se trascuriamo la memoria, la saggezza e l’esperienza degli anziani e le aspirazioni dei giovani? A questo proposito vorrei chiedervi di prendervi cura in modo speciale dell’educazione dei giovani, sostenendo nella loro indispensabile missione non solo le università, che sono importanti, ma anche le scuole cattoliche di ogni grado, a partire da quelle elementari, dove le giovani menti e i cuori vengono formati all’amore di Dio e della sua Chiesa, al bene, al vero e al bello, ad essere buoni cristiani e onesti cittad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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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ere custodi di speranza implica anche garantire che la testimonianza profetica della Chiesa in Corea continui ad esprimersi nella sua sollecitudine per i poveri e nei suoi programmi di solidarietà, soprattutto per i rifugiati e i migranti e per coloro che vivono ai margini della società. Questa sollecitudine dovrebbe manifestarsi non solo attraverso concrete iniziative di carità – che sono necessarie – ma anche nel costante lavoro di promozione a livello sociale, occupazionale ed educativo. Possiamo correre il rischio di ridurre il nostro impegno con i bisognosi alla sola dimensione assistenziale, dimenticando la necessità di ognuno di crescere come persona – il diritto che ha di crescere come persona – e di poter esprimere con dignità la propria personalità, creatività e cultura. La solidarietà con i poveri è al centro del Vangelo; va considerata come un elemento essenziale della vita cristiana; mediante la predicazione e la catechesi, fondate sul ricco patrimonio della dottrina sociale della Chiesa, essa deve permeare i cuori e le menti dei fedeli e riflettersi in ogni aspetto della vita ecclesiale. L’ideale apostolico di una Chiesa dei poveri e per i poveri, una Chiesa povera per i poveri, ha trovato espressione eloquente nelle prime comunità cristiane della vostra nazione. Auspico che questo ideale continui a modellare il cammino della Chiesa in Corea nel suo pellegrinaggio verso il futuro. Sono convinto che se il volto della Chiesa è in primo luogo il volto dell’amore, sempre più giovani saranno attratti verso il cuore di Gesù sempre infiammato di amore divino nella comunione del suo mistico Corpo.
 
Ho detto che i poveri sono al centro del Vangelo; sono anche all’inizio e alla fine. Gesù, nella sinagoga di Nazareth, parla chiaro, all’inizio della sua vita apostolica. E quando parla dell’ultimo giorno e ci fa conoscere quel “protocollo” sul quale tutti noi saremo giudicati – Matteo 25 –, anche lì ci sono i poveri. C’è un pericolo, c’è una tentazione che viene nei momenti di prosperità: è il pericolo che la comunità cristiana si “socializzi”, cioè che perda quella dimensione mistica, che perda la capacità di celebrare il Mistero e si trasformi in una organizzazione spirituale, cristiana, con valori cristiani, ma senza lievito profetico. Lì si è persa la funzione che hanno i poveri nella Chiesa. Questa è una tentazione della quale le Chiese particolari, le comunità cristiane hanno sofferto tanto, nella storia. E questo fino al punto di trasformarsi in una comunità di classe media, nella quale i poveri arrivano a provare anche vergogna: hanno vergogna di entrare. E’ la tentazione del benessere spirituale, del benessere pastorale. Non è una Chiesa povera per i poveri, ma una Chiesa ricca per i ricchi, o una Chiesa di classe media per i benestanti. E questo non è cosa nuova: questo cominciò all’inizio. Paolo deve rimproverare i Corinzi, nella Prima Lettera, capitolo XI, versetto 17; e l’apostolo Giacomo più forte ancora, e più esplicito, nel suo capitolo II, versetti da 1 a 7: deve rimproverare queste comunità benestanti, queste Chiese benestanti per i benestanti. Non si cacciano via i poveri ma si vive in modo tale che loro non osino entrare, non si sentano a casa loro. Questa è una tentazione della prosperità. Io non vi rimprovero, perché so che voi lavorate bene. Ma come fratello che deve confermare nella fede i suoi fratelli, vi dico: state attenti, perché la vostra è una Chiesa in prosperità, è una grande Chiesa missionaria, è una grande Chiesa. Il diavolo non semini questa zizzania, questa tentazione di togliere i poveri dalla struttura profetica stessa della Chiesa, e vi faccia diventare una Chiesa benestante per i benestanti, una Chiesa del benessere… non dico fino ad arrivare alla ‘teologia della prosperità’, no, ma nella mediocrit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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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i fratelli, una profetica testimonianza evangelica presenta alcune sfide particolari per la Chiesa in Corea, dal momento che essa vive ed opera nel mezzo di una società prospera ma sempre più secolarizzata e materialistica. In tali circostanze gli operatori pastorali sono tentati di adottare non solo efficaci modelli di gestione, programmazione e organizzazione tratti dal mondo degli affari, ma anche uno stile di vita e una mentalità guidati più da criteri mondani di successo e persino di potere che dai criteri enunciati da Gesù nel Vangelo. Guai a noi se la Croce viene svuotata del suo potere di giudicare la saggezza di questo mondo! (cfr 1 Cor 1,17). Esorto voi e i vostri fratelli sacerdoti a respingere questa tentazione in tutte le sue forme. Voglia il Cielo che possiamo salvarci da quella mondanità spirituale e pastorale che soffoca lo Spirito, sostituisce la conversione con la compiacenza e finisce per dissipare ogni fervore missionario! (cfr Esort. ap. Evangelii gaudium, 9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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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i fratelli Vescovi, grazie di tutto quello che voi fate: grazie. E con queste riflessioni sulla vostra missione come custodi della memoria e della speranza, ho voluto incoraggiarvi nei vostri sforzi per incrementare l’unità, la santità e lo zelo dei fedeli in Corea. La memoria e la speranza ci ispirano e ci guidano verso il futuro. Vi ricordo tutti nelle mie preghiere e vi esorto sempre a confidare nella forza della grazia di Dio. Non dimenticatevi: “Il Signore è fedele”. Noi non siamo fedeli, ma Lui è fedele. “Egli vi confermerà e vi custodirà dal Maligno” (2 Ts 3,3). Possano le preghiere di Maria, Madre della Chiesa, portare a piena fioritura in questa terra i semi sparsi dai martiri, irrorati da generazioni di fedeli cattolici e trasmessi a voi come promessa per il futuro del Paese e del mondo. A voi e a tutti coloro che si sono affidati alla vostra cura pastorale e alla vostra custodia, imparto di cuore la mia Benedizione, e vi chiedo, per favore, di pregare per me. Graz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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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UENTRO CON LOS OBISPOS DE COREA
 
DISCURSO DEL SANTO PADRE FRANCISCO
 
Sede de la Conferencia Episcopal Coreana, Seúl
Jueves 14 de agosto de 2014
 
 
Agradezco a Mons. Peter U-il Kang las fraternas palabras de bienvenida que me ha dirigido en nombre de todos. Es una bendición para mí estar aquí y conocer personalmente la vitalidad de la Iglesia coreana. A ustedes, como Pastores, corresponde la tarea de custodiar el rebaño del Señor. Son los custodios de las maravillas que él realiza en su pueblo. Custodiar es una de las tareas confiadas específicamente al Obispo: cuidar del Pueblo de Dios. Como hermano en el Episcopado, me gustaría reflexionar hoy con ustedes sobre dos aspectos centrales del cuidado del Pueblo de Dios en este país: ser custodios de la memoria y ser custodios de la esperan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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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 custodios de la memoria. La beatificación de Pablo Yun Ji-chung y de sus compañeros constituye una ocasión para dar gracias al Señor que ha hecho que, de las semillas esparcidas por los mártires, esta tierra produjera una abundante cosecha de gracia. Ustedes son los descendientes de los mártires, herederos de su heroico testimonio de fe en Cristo. Son además herederos de una extraordinaria tradición que surgió y se desarrolló gracias a la fidelidad, a la perseverancia y al trabajo de generaciones de laicos. Ellos no tenían la tentación del clericalismo: eran laicos, caminaban ellos solos. Es significativo que la historia de la Iglesia en Corea haya comenzado con un encuentro directo con la Palabra de Dios. Fue la belleza intrínseca y la integridad del mensaje cristiano –el Evangelio y su llamada a la conversión, a la renovación interior y a una vida de caridad– lo que impresionó a Yi Byeok y a los nobles ancianos de la primera generación; y la Iglesia en Corea mira ese mensaje, en su pureza, como un espejo, para descubrirse auténticamente a sí misma.
 
La fecundidad del Evangelio en la tierra coreana y el gran legado transmitido por sus antepasados en la fe, se pueden reconocer hoy en el florecimiento de parroquias activas y de movimientos eclesiales, en sólidos programas de catequesis, en la atención pastoral a los jóvenes y en las escuelas católicas, en los seminarios y en las universidades. La Iglesia en Corea se distingue por su presencia en la vida espiritual y cultural de la nación y por su fuerte impulso misionero. De tierra de misión, Corea ha pasado a ser tierra de misioneros; y la Iglesia universal se beneficia de los muchos sacerdotes y religiosos enviados por el mu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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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 custodios de la memoria implica algo más que recordar o conservar las gracias del pasado. Requiere también sacar de ellas los recursos espirituales para afrontar con altura de miras y determinación las esperanzas, las promesas y los retos del futuro. Como ustedes mismos han señalado, la vida y la misión de la Iglesia en Corea no se mide en último término con criterios exteriores, cuantitativos o institucionales; más bien debe ser considerada a la clara luz del Evangelio y de su llamada a la conversión a Jesucristo. Ser custodios de la memoria significa darse cuenta de que el crecimiento lo da Dios (cf. 1 Co 3,6), y al mismo tiempo es fruto de un trabajo paciente y perseverante, tanto en el pasado como en el presente. Nuestra memoria de los mártires y de las generaciones anteriores de cristianos debe ser realista, no idealizada ni “triunfalista”. Mirar al pasado sin escuchar la llamada de Dios a la conversión en el presente no nos ayudará a avanzar en el camino; al contrario, frenará o incluso detendrá nuestro progreso espirit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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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emás de ser custodios de la memoria, queridos hermanos, ustedes están llamados a ser custodios de la esperanza: la esperanza que nos ofrece el Evangelio de la gracia y de la misericordia de Dios en Jesucristo, la esperanza que inspiró a los mártires. Ésa es la esperanza que estamos llamados a proclamar en un mundo que, a pesar de su prosperidad material, busca algo más, algo más grande, algo auténtico y que dé plenitud. Ustedes y sus hermanos sacerdotes ofrecen esta esperanza con su ministerio de santificación, que no sólo conduce a los fieles a las fuentes de la gracia en la liturgia y en los sacramentos, sino que los alienta constantemente a responder a la llamada de Dios hasta llegar a la meta (cf. Flp 3,14). Ustedes custodian esta esperanza manteniendo viva la llama de la santidad, de la caridad fraterna y del celo misionero en la comunión eclesial. Por esta razón les pido que estén siempre cerca de sus sacerdotes, animándolos en su labor cotidiana, en la búsqueda de santidad y en la proclamación del Evangelio de la salvación. Les pido que les transmitan mi saludo afectuoso y mi gratitud por su generoso servicio al Pueblo de Dios. Estén cerca de sus sacerdotes, por favor, cercanía, cercanía con los sacerdotes. Que puedan acceder a su obispo. Esa cercanía fraterna del obispo, y también paterna: la necesitan en muchas circunstancias de su vida pastoral. No obispos lejanos o, lo que es peor, que se alejan de sus sacerdotes. Lo digo con dolor. En mi tierra, oía decir con frecuencia a algunos sacerdotes: «He llamado al obispo; le he pedido audiencia; han pasado tres meses, y todavía no me ha respondido”. Escucha, hermano, si un sacerdote te llama hoy para pedirte audiencia, respóndele enseguida, hoy o mañana. Si no tienes tiempo para recibirlo, díselo: “No puedo porque tengo esto, esto, esto. Pero me gustaría escucharte y estoy a tu disposición”. Que sientan la respuesta del padre, enseguida. Por favor, no se alejen de sus sacerd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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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 aceptamos el reto de ser una Iglesia misionera, una Iglesia constantemente en salida hacia el mundo y en particular a las periferias de la sociedad contemporánea, tenemos que desarrollar ese “gusto espiritual” que nos hace capaces de acoger e identificarnos con cada miembro del Cuerpo de Cristo (cf. Exhort. ap. Evangelii gaudium, 268). En este sentido, nuestras comunidades deberían mostrar una solicitud particular por los niños y los ancianos. ¿Cómo podemos ser custodios de la esperanza sin tener en cuenta la memoria, la sabiduría y la experiencia de los ancianos y las aspiraciones de los jóvenes? A este respecto quisiera pedirles que se ocupen especialmente de la educación de los jóvenes, apoyando la indispensable misión no sólo de las universidades, que son importantes, sino también de las escuelas católicas desde los primeros niveles, donde la mente y el corazón de los jóvenes se forman en el amor de Dios y de su Iglesia, en la bondad, la verdad y la belleza, para ser buenos cristianos y honestos ciudadanos.
 
[T]
 
Ser custodios de la esperanza implica también garantizar que el testimonio profético de la Iglesia en Corea siga expresándose en su solicitud por los pobres y en sus programas de solidaridad, sobre todo con los refugiados y los inmigrantes, y con aquellos que viven al margen de la sociedad. Esta solicitud debería manifestarse no sólo mediante iniciativas concretas de caridad –que son necesarias– sino también con un trabajo constante de promoción social, ocupacional y educativa. Podemos correr el riesgo de reducir nuestro compromiso con los necesitados solamente a la dimensión asistencial, olvidando la necesidad que todos tienen de crecer como personas –el derecho a crecer como personas–, y de poder expresar con dignidad su propia personalidad, su creatividad y cultura. La solidaridad con los pobres está en el centro del Evangelio; es un elemento esencial de la vida cristiana; mediante una predicación y una catequesis basadas en el rico patrimonio de la doctrina social de la Iglesia, debe permear los corazones y las mentes de los fieles y reflejarse en todos los aspectos de la vida eclesial. El ideal apostólico de una Iglesia de los pobres y para los pobres, una Iglesia pobre para los pobres, quedó expresado elocuentemente en las primeras comunidades cristianas de su nación. Espero que este ideal siga caracterizando la peregrinación de la Iglesia en Corea hacia el futuro. Estoy convencido de que si el rostro de la Iglesia es ante todo el rostro del amor, los jóvenes se sentirán cada vez más atraídos hacia el Corazón de Jesús, siempre inflamado de amor divino en la comunión de su Cuerpo Místico.
 
He dicho que los pobres están en el centro del Evangelio; están también al principio y al final. Jesús, en la sinagoga de Nazaret, habla claro, al comienzo de su vida apostólica. Y cuando habla del último día y nos da a conocer ese “protocolo” con el que todos seremos juzgados –Mt 25–, también allí se encuentran los pobres. Hay un peligro, una tentación, que aparece en los momentos de prosperidad: es el peligro de que la comunidad cristiana se “socialice”, es decir, que pierda su dimensión mística, que pierda la capacidad de celebrar el Misterio y se convierta en una organización espiritual, cristiana, con valores cristianos, pero sin fermento profético. En tal caso, se pierde la función que tienen los pobres en la Iglesia. Es una tentación que han tenido las Iglesias particulares, las comunidades cristianas, a lo largo de la historia. Hasta el punto de transformarse en una comunidad de clase media, en la que los pobres llegan incluso a sentir vergüenza: les da vergüenza entrar. Es la tentación del bienestar espiritual, del bienestar pastoral. No es una Iglesia pobre para los pobres, sino una Iglesia rica para los ricos, o una Iglesia de clase media para los acomodados. Y esto no es algo nuevo: empezó desde los primeros momentos. Pablo se vio obligado a reprender a los Corintios, en la primera Carta, capítulo 11, versículo 17; y el apóstol Santiago fue todavía más duro y más explícito, en el capítulo 2, versículos 1 al 7: se vio obligado a reprender a esas comunidades acomodadas, esas Iglesias acomodadas y para acomodados. No se expulsa a los pobres, pero se vive de tal forma, que no se atreven a entrar, no se sienten en su propia casa. Ésta es una tentación de la prosperidad. Yo no les reprendo, porque sé que ustedes trabajan bien. Pero como hermano que tiene que confirmar en la fe a sus hermanos, les digo: estén atentos, porque su Iglesia es una Iglesia en prosperidad, es una gran Iglesia misionera, es una Iglesia grande. Que el diablo no siembre esta cizaña, esta tentación de quitar a los pobres de la estructura profética de la Iglesia, y les convierta en una Iglesia acomodada para acomodados, una Iglesia del bienestar… no digo hasta llegar a la “teología de la prosperidad”, no, sino de la mediocri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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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ridos hermanos, el testimonio profético y evangélico presenta algunos retos particulares a la Iglesia en Corea, que vive y se mueve en medio de una sociedad próspera pero cada vez más secularizada y materialista. En estas circunstancias, los agentes pastorales sienten la tentación de adoptar no sólo modelos eficaces de gestión, programación y organización tomados del mundo de los negocios, sino también un estilo de vida y una mentalidad guiada más por los criterios mundanos del éxito e incluso del poder, que por los criterios que nos presenta Jesús en el Evangelio. ¡Ay de nosotros si despojamos a la Cruz de su capacidad para juzgar la sabiduría de este mundo! (cf. 1 Co 1,17). Los animo a ustedes y a sus hermanos sacerdotes a rechazar esta tentación en todas sus modalidades. Dios quiera que nos podamos salvar de esa mundanidad espiritual y pastoral que sofoca el Espíritu, sustituye la conversión por la complacencia y termina por disipar todo fervor misionero (cf. Exhort. ap. Evangelii gaudium, 9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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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ridos hermanos Obispos, gracias por todo lo que hacen: gracias. Y con estas reflexiones sobre su misión como custodios de la memoria y de la esperanza, he pretendido animarlos en sus esfuerzos por incrementar la unidad, la santidad y el celo de los fieles en Corea. La memoria y la esperanza nos inspiran y nos guían hacia el futuro. Los tengo presentes a todos en mis oraciones y les pido que confíen siempre en la fuerza de la gracia de Dios. No se olviden: «El Señor es fiel”. Nosotros no somos fieles, pero él es fiel. Él “les dará fuerzas y los librará del Maligno» (2 Ts 3,3). Que las oraciones de María, Madre de la Iglesia, hagan florecer plenamente en esta tierra las semillas sembradas por los mártires, regadas por generaciones de fieles católicos y trasmitidas a ustedes como promesa de futuro para el país y el mundo. A ustedes y a cuantos han sido confiados a su atención y custodia pastoral, les imparto de corazón la Bendición. Y les pido, por favor, que recen por mí. Graci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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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07 오후 8: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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