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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신앙의 해’ 제정 자의 교서

글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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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신앙의 해’ 제정 자의 교서

믿음의 문
(Porta Fidei)
1. “믿음의 문”(사도 14,27)은 언제나 우리에게 열려 있습니다. 이 문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는 삶으로, 하느님의 교회로 들어갑니다. 하느님 말씀이 선포되고, 변화시키는 은총으로 마음이 움직일 때, 이 문턱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이 문에 들어선다는 것은 평생 동안 이어지는 여정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는 세례로 시작되고(로마 6,4 참조), 죽음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 목적지에 이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주 예수님의 부활에서 떠오릅니다. 주님께서는 성령을 주시어 당신을 믿는 이는 누구나 당신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기를 바라셨습니다(요한 17,22 참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한다는 것은 한 분이신 하느님, 사랑이신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1요한 4,8 참조). 성부께서는 때가 찼을 때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 아드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죽음과 부활의 신비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다음 시대에 주님의 영광스러운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교회를 이끌고 계십니다.
2.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로서 처음 직무를 시작한 이래, 저는 그리스도와 만나는 기쁨과 새로운 열정을 더욱 북돋우기 위하여 신앙의 여정을 재발견할 필요가 있다고 줄곧 말해 왔습니다. 저는 교황 즉위 미사 강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전체 교회와 목자는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광야에서부터 생명의 풀밭으로, 성자와 나누는 친교로, 우리에게 생명을 풍성하게 주시는 한 분께 이끌어야 합니다.” 1)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이 사회생활의 자명한 전제라고 여기면서도,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자기 일의 결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가 흔합니다. 실제로, 이 전제를 더 이상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뿐더러 종종 공공연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2) 과거에는 단일한 문화 구도가 있어 그 전제가 신앙의 내용과 그 영감을 받은 가치들에 호소하는 것으로 폭넓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반면, 오늘날에는 많은 이들이 깊은 신앙의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에 사회 대부분의 영역에서 이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3. 우리는 소금이 제 맛을 잃거나 등불이 감추어지는 일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마태 5,13-16 참조). 사마리아 여인처럼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우물로 가야 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당신 안에서 샘솟는 살아 있는 물을 길어 마시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요한 4,14 참조). 우리는 교회가 충실히 전해 주는 하느님 말씀과 당신 제자들에게 주시는 생명의 빵으로 길러지는 맛을 되찾아야 합니다(요한 6,51 참조). 실제로,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은 우리 시대에도 변함없이 힘 있게 울려 퍼집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7). 오늘날 우리도 그분의 말씀을 들었던 군중이 했던 질문을 똑같이 해 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요한 6,28).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요한 6,29).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결정적인 길입니다.
4. 이 모든 것에 비추어, 저는 ‘신앙의 해’(Year of Faith) 선포를 결정하였습니다. 신앙의 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막 50주년이 되는 2012년 10월 11일에 시작하여 2013년 11월 24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끝날 것입니다. 그 첫날인 2012년 10월 11일은 저의 선임자 요한 바오로 2세 복자가 신앙의 힘과 아름다움을 모든 신자에게 알리고자 『가톨릭 교회 교리서』(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를 반포한 지 2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3) 이 교리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진정한 결실로 1985년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 임시 총회가 교리 교육을 위한 도구로 요청한 것이고, 4) 가톨릭 교회의 모든 주교들이 협력하여 마련된 것입니다. 더욱이 제가 소집한 2012년 10월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 정기 총회의 주제도 “그리스도 신앙의 전수를 위한 새 복음화”입니다. 이는 온 교회가 특별한 성찰로 신앙을 다시 찾도록 이끄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교회가 ‘신앙의 해’를 경축하도록 부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존경하는 저의 선임자 하느님의 종 바오로 6세가 1967년에, 탁월한 증언 활동을 펼치신 베드로 성인과 바오로 성인의 순교 1900주년을 기념하고자 ‘신앙의 해’를 선포한 바 있습니다. 바오로 6세는 이 해를 온 교회가 “같은 신앙을 참되고 성실하게 고백”하는 장엄한 때라고 여겼습니다. 나아가, 이것이 “개인적이면서도 단체적으로, 자유로우면서도 의식적으로, 내적 외적으로, 겸허하면서도 솔직한” 5) 방식으로 확인되기를 바랐습니다. 바오로 6세는 이러한 방식으로 온 교회가 “신앙 교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쌓아 “신앙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신앙을 정화하고 확인하고 고백할 수 있다” 6)고 생각했습니다. 그 해에 일어난 커다란 변화들이 이러한 거행의 필요성을 더욱 분명하게 해 주었습니다. 이 신앙의 해는 「하느님 백성의 신앙 고백」(Credo of the People of God) 7)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이 문서는, 수세기 동안 모든 신자들의 유산을 형성해 온 그 핵심 내용을 확인하고 이해하며 새롭게 탐구하는 일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또 이를 통하여 과거와는 사뭇 다른 역사적 상황에서도 항구한 증언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5. 어떤 측면에서, 바오로 6세는 특히 참된 신앙 고백과 그 올바른 해석과 관련하여 그 시대의 심각한 어려움들을 충분히 인식하면서, 이 신앙의 해를 “공의회 이후의 시대적 요구와 결과” 8)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막 50주년에 맞추어 ‘신앙의 해’를 시작하는 것이 공의회의 가르침을 이해하도록 돕는 좋은 기회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복자의 말대로, 공의회 교부들이 유산으로 남긴 문헌들은 “그 가치나 광채가 전혀 퇴색되지 않았습니다. 공의회 문헌들은 올바르게 읽혀져야 하며, 교회의 전통 안에서 교도권의 중요한 규범적 문헌들로 널리 알려지고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 저는 그 어느 때보다 공의회를 20세기의 교회에 내려진 큰 은총으로 강조할 의무를 느낍니다. 이제 막 시작된 이 세기에 우리의 위치를 확인할 확실한 나침반을 우리는 공의회에서 발견합니다.” 9) 제가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로 선출되고 나서 몇 달 뒤에 드렸던 공의회에 관한 말씀을 다시금 강조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올바른 해석학에 따라 읽고 이해한다면, 공의회는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교회의 쇄신에 더욱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10)
6. 교회의 쇄신은 또한 신자들의 삶의 증언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남겨 주신 진리의 말씀을 널리 퍼뜨리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공의회도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거룩하시고 순수하시고 순결하신’(히브 7,26) 그리스도께서 죄를 모르셨지만(2코린 5,21 참조) 오로지 백성들의 죄를 없애러 오셨으므로(히브 2,17 참조), 자기 품에 죄인들을 안고 있기에 거룩하면서도 언제나 정화되어야 하는 교회는 끊임없이 참회와 쇄신을 추구합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십자가와 죽음을 전하며(1코린 11,26 참조), ‘세상의 박해와 하느님의 위안 속에서 나그넷길을 걷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으로 굳세게 되어, 안팎으로 당하는 고통과 난관을 인내와 사랑으로 이겨 내며, 마지막 때에 충만한 빛 속에서 드러날 주님의 신비를 어렴풋이나마 충실하게 세상에 보여 줍니다.” 11)

이러한 전망에서, 신앙의 해는 온 세상의 유일한 구세주이신 주님을 향하여 참으로 새롭게 돌아서라는 초대입니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죄의 용서를 통한 삶의 회개로 우리를 부르시는 사랑을 온전히 드러내 보이십니다(사도 5,31 참조). 바오로 사도는 이 사랑이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이끈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4). 신앙을 통하여 이 새로운 삶은 부활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실재에 따라 인간의 존재 전체를 형성합니다. 이 생애에서 결코 완전히 끝나지 않는 여정 중에서도, 인간이 자유 의지로 협력하는 정도에 따라 그의 생각과 정서와 사고방식과 행동은 차츰차츰 정화되고 변화됩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이 인간의 삶 전체를 바꾸어 놓는 사유와 행동의 새로운 기준이 됩니다(로마 12,2; 콜로 3,9-10; 에페 4,20-29; 2코린 5,17 참조).
7.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2코린 5,14). 우리 마음에 가득 차서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도록 우리를 다그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세상의 길들을 통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당신 복음을 선포하도록 우리를 보내십니다(마태 28,19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사랑으로 모든 세대의 사람들을 당신께 이끌어 모으십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시대에 교회를 부르시어 늘 새로운 명령으로 교회에 복음 선포의 사명을 맡기십니다. 오늘날에도 믿는 기쁨과 신앙 전수의 열정을 되찾기 위해서는 새로운 복음화를 향한 교회의 더욱 힘찬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날마다 재발견하면서, 신자들의 선교 노력은 결코 퇴색되지 않는 힘과 열정을 얻습니다. 사랑 받은 경험으로 믿음을 실천하고 은총과 기쁨의 경험으로 믿음을 전할 때, 믿음이 자라납니다. 믿음은 우리를 풍성하게 해 줍니다. 우리 마음을 희망으로 채우고 우리가 생명을 주는 증언을 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믿음은 듣는 이의 마음과 정신을 열어 그들이 당신 말씀을 따르고 당신 제자가 되라는 주님의 초대에 응답하게 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말한 대로, 믿는 이들은 “믿음을 통하여 스스로 강해집니다.” 12) 히포의 주교 성인이 그렇게 표현한 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도 알고 있듯이, 그의 삶은 그의 마음이 하느님 안에 쉬기까지 신앙의 아름다움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온 삶이었습니다. 13) 그는 방대한 저술들을 통하여 믿음의 중요성과 믿음의 진리를 설명하였는데, 이 저술들은 오늘날까지도 비길 데 없는 풍요로운 유산으로 남아, 하느님을 찾는 많은 이들이 ‘믿음의 문’을 향한 올바른 길을 발견하는 데에 여전히 도움이 됩니다.

따라서 신앙은 오로지 믿으면서 자라고 더욱 강해집니다. 하느님에게서 생겨난 것이기에 끊임없이 날로 자라는 사랑의 손길에 더욱더 자신을 내어 맡기지 않고서는 삶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8. 이 기쁜 때에, 저는 전 세계의 형제 주교들이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와 함께 이 영적인 은총의 때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중한 신앙의 은총을 기억하도록 초대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 신앙의 해를 가치 있고 풍요롭게 경축하고자 합니다. 특히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이 커다란 변화의 시기에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가 복음을 더욱 잘 이해하고 충실히 따르도록 도우려면, 신앙에 대하여 더욱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이가 언제나 변함없는 신앙을 더욱 잘 이해하고 미래의 세대에게 전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수 있도록, 우리는 전 세계의 주교좌 성당과 본당에서, 그리고 우리의 가정과 가족들이 함께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기회를 가질 것입니다. 수도회와 본당 공동체, 그리고 모든 교회 단체는 이 신앙의 해에 공적으로 신앙 고백(Credo)을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9. 우리는 이 신앙의 해에 모든 신자들이 충만하게, 새로운 확신으로, 신념과 희망을 가지고 신앙을 고백하는 열망을 지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것은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 14)인 전례, 특히 성찬례를 통한 신앙의 경축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신자들의 삶을 통한 증언이 더욱 신뢰를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고백하고, 경축하며, 실천하고, 기도하는 신앙의 내용을 재발견하고 15), 신앙 행위를 성찰하는 것은 특히 이 신앙의 해에 모든 신자들이 짊어져야 할 책무입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신경(Credo)을 외워야만 했던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신경은 그들이 세례 때 했던 약속을 잊지 않도록 해 주는 매일 기도의 역할을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신경 수락식’(redditio symboli)에서 한 강론에서 다음과 같은 풍성한 의미가 담긴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모두 함께 받았고 오늘 한 사람 한 사람이 외운 거룩한 신비에 대한 신경은 어머니인 교회의 신앙이 주님이신 그리스도라는 확고한 토대 위에 견고히 세워 놓은 말씀들입니다. 여러분은 그 신앙을 받고 또 고백하였으니, 이제 여러분의 마음과 정신 안에 늘 간직하여야 합니다. 잠자리에서도 반복하고, 저잣거리에서도 떠올리며, 식사 때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몸이 잠들었을 때에도 여러분의 마음은 늘 그것을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16)
10. 여기에서 저는 신앙의 내용뿐 아니라, 전적인 자유로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고자 결심한 우리의 행동을 더욱 깊이 깨닫는 데 도움이 되는 여정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사실, 우리 믿음의 행위와 우리가 동의하는 내용은 깊이 일치합니다. 바오로 성인은 이러한 사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이렇게 썼습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로마 10,10). 여기서 마음은 신앙에 이르도록 해 준 첫째 행위가 바로 하느님의 선물과 은총의 활동이며, 이는 그 사람을 내면 깊숙이 움직이고 변화시켜 준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이와 관련하여 리디아의 모범은 특히 감명적입니다. 루카 성인은 바오로 사도가 필리피에 있을 당시 안식일에 몇몇 여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다고 들려줍니다. 그들 가운데 리디아가 있었고,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사도 16,14)고 전합니다. 이 표현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루카 성인은, 믿어야 할 내용을 단순히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사람 안에 있는 지성소인 마음이 은총으로 열려 깊이 바라보는 눈을 지니고, 선포된 내용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또한 입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신앙이 공적인 증언과 노력을 내포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믿음을 사적인 행위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은 주님과 더불어 살고자 그분과 함께 하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렇게 “그분과 함께 한다”는 것은 믿는 이유를 이해하도록 해 줍니다. 바로 신앙이 자유로운 행위이기에 자신의 신앙에 대한 사회적 책임도 필요합니다. 교회는 성령 강림 대축일에 자신의 신앙과 그것을 모든 이에게 담대하게 선포하는 행위가 공적인 차원을 가진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선교에 적합한 사람이 되도록 하고, 우리의 증언이 솔직하고 담대하도록 해 주는 것이 바로 성령의 은총입니다.

신앙 고백은 개인적이며 동시에 공동체적인 행위입니다. 사실, 신앙의 첫 주체는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신앙 안에서 개개인은 세례를 받는데, 이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는 이들의 백성이 된다는 효과적인 표시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따르면, “‘저는 믿나이다.’ 이는 주로 신자들이 세례 때 신자들이 개인적으로 고백하는 교회의 신앙입니다. ‘저희는 믿나이다.’ 이는 공의회에 모인 주교들이, 더욱 일반적으로는 신자들의 전례 모임이 고백하는 교회의 신앙입니다. ‘저는 믿나이다.’ 이는 교회가 자신의 신앙으로 하느님께 응답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저는 믿나이다.’, ‘저희는 믿나이다.’ 하고 말하도록 가르치는 것 또한 우리 어머니인 교회입니다.” 17)

분명, 신앙의 내용을 아는 것은 개인이 직접 이에 동의하는 데에, 다시 말해 교회가 제시하는 모든 것을 지성과 의지로 전적으로 충실히 따르는 데에 필수적입니다. 신앙을 알면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구원의 신비로 온전히 들어가게 됩니다. 동의한다는 것은 우리가 믿으면서 신앙의 신비 전체를 자유로이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합니다.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고 당신 사랑의 신비를 알도록 해 주시는 하느님께서 바로 당신 진리를 보증하시기 때문입니다. 18)

한편, 우리의 문화적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신앙의 은총이 그들 자신에게도 있음을 인정하지 않지만 자기 존재와 세상의 궁극적 의미와 결정적 진리를 진지하게 찾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추구는 신앙으로 나아가는 참다운 ‘시작’이 됩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신비에 이르는 길로 사람들을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간 이성은 그 자체로 “영원한 가치를 지니고 항구한 것”19)을 요구합니다. 인간의 마음 안에 지워지지 않게 각인된 이러한 요구는 이미 먼저 우리를 만나러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찾지 않았을 그분을 찾아 나서라고 끊임없이 우리를 재촉하고 있습니다.20) 신앙은 바로 이 만남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우리 마음을 온전히 열어 줍니다.
11. 신앙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알고자 하는 이라면 누구나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귀중하고 꼭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장 중요한 결실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30주년을 맞이하여 복자 요한 바오로 2세가 서명한 교황령 「신앙의 유산」에서 이렇게 말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 교리서는 …… 교회 생활 전체의 쇄신에 크게 이바지할 것입니다.…… 이 교리서가 신앙 교육을 위한 확고한 규범이며 교회의 친교를 위해 유효하고 권위 있는 도구임을 확인합니다.”21)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신앙의 해에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체계적이고 유기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신앙의 근본 내용을 재발견하고 연구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이 교리서에서 교회가 이천년의 역사 동안 받아들이고 지키고 제공했던 가르침의 풍요로움이 흘러나옵니다. 성경에서 교부들에 이르기까지, 또 수세기에 걸쳐 나타난 신학자들과 성인들에 이르기까지, 이 교리서는 교회가 신앙에 관하여 성찰하고 교의를 발전시켜 온 수많은 방법들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하여, 신자들에게 신앙생활에서 확신을 갖도록 해 줍니다.

그 구조 자체에서,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일상생활의 중요한 주제들에 이르기까지 신앙이 전개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교리서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그 안에 제시된 것이 이론이 아니라 교회 안에 살아계시는 분과 이루는 만남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신앙 고백에 이어 성사 생활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이 성사 생활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며, 당신 교회를 계속해서 세워 나가십니다. 전례와 성사들이 없다면 신앙 고백은 유효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신앙 고백에는 그리스도인들의 증언을 뒷받침해 주는 은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도덕 생활에 관한 이 교리서의 가르침은 신앙과 전례와 기도와 관련될 때에 비로소 그 충만한 의미를 갖습니다.
12. 따라서 이 신앙의 해에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특히 우리의 문화적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그리스도인 교육과 관련된 이들에게 신앙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저는 신앙교리성이 성좌의 관련 부서들과 협의하여 ‘공지’(Note)를 마련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공지는 교회와 개별 신자들이 신앙과 복음화를 위하여 이 신앙의 해를 가장 효과적이고 적절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에 관한 몇 가지 지침을 제시할 것입니다.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신앙은 변화된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일련의 문제들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 이러한 사고방식 안에서 합리적 확실성이 과학적 기술적 발견에 한정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는 신앙과 진정한 과학 사이에는 어떠한 갈등도 있을 수 없으며, 비록 서로의 길이 달라도 모두 진리를 추구해 왔다고 늘 당당히 밝혀 왔습니다. 22)
13. 거룩함과 죄가 교차되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가 배인 우리 신앙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은 이 신앙의 해에 특히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거룩함은 인간이 자신의 삶의 증언을 통하여 공동체의 성장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음을 밝혀 주는 것인 데 비하여, 죄는 모든 이를 위한 아버지의 자비를 체험할 수 있도록 저마다의 진지하고 지속적인 회개 활동을 촉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신앙의 해에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히브 12,2)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킬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인간 마음의 모든 고뇌와 갈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족됩니다. 사랑의 기쁨, 고통과 아픔의 사건에 대한 해답, 공격을 받고도 이를 용서하는 힘, 죽음의 공허에 대한 생명의 승리,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의 신비, 곧 사람이 되시어 우리의 인간적 약점에 함께 하시고 당신 부활의 힘을 통하여 이를 변화시켜 주신 그 신비 안에서 충만해집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2000년 이어진 우리의 구원 역사에 발자취를 남긴 신앙의 모범들이 찬란히 빛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성모님께서는 천사의 말을 받아들여 겸손하게 순명하시면서 당신이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시리라는 예고를 믿으셨습니다(루카 1,38 참조). 성모님께서는 엘리사벳을 방문하셨을 때, 믿는 이들에게 큰일을 하신 지극히 높으신 분께 찬미의 노래를 바치셨습니다(루카 1,46-55 참조). 기쁨과 설렘으로 성모님께서는 온전한 동정녀로서 외아드님을 낳으셨습니다(루카 2,6-7 참조). 당신의 정배인 요셉을 신뢰하며 성모님께서는 헤로데의 박해에서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집트로 피신하셨습니다(마태 2,13-15 참조). 또 한결같은 믿음으로, 성모님께서는 말씀을 선포하시는 주님을 따라 골고타에 이르기까지 주님 곁에 머무셨습니다(요한 19,25-27 참조). 성모님께서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부활의 열매를 맛보고 모든 기억을 마음에 소중히 간직하셨고(루카 2,19.51 참조), 성령을 받기 위하여 당신과 함께 위층 방에 모여 있던 열두 제자들에게 그 기억을 전해 주셨습니다(사도 1,14; 2,1-4 참조).

믿음으로, 사도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그들의 스승을 따랐습니다(마르 10,28 참조). 그들은 주님께서 몸소 보여 주시고 완성하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한 말씀을 믿었습니다(루카 11,20 참조). 그들은 예수님과 친교를 이루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르치셨고, 당신이 돌아가신 다음 그들이 당신의 제자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삶의 새로운 원칙을 남겨 주셨습니다(요한 13,34-35 참조). 믿음으로, 그들은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에 따라 온 세상으로 나갔습니다(마르 16,15 참조). 그리고 그들은 부활의 충실한 증인으로 그 기쁨을 모든 이에게 담대하게 선포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제자들은 첫 공동체를 이루어 사도들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모여 기도하고 성찬례를 거행하고 가진 것을 공유하고 필요한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사도 2,42-47 참조).

믿음으로, 순교자들은 복음의 진리를 증언하며 자신의 목숨을 바쳤습니다. 복음은 그들을 바꾸어 놓아 가장 위대한 사랑의 은총을 받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을 박해한 이들을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복음적인 단순함 속에 순명과 청빈과 정결의 삶을 살고자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삶을 봉헌한 이들이 있습니다. 이는 머지않아 곧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구체적인 징표입니다. 믿음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정의를 위한 활동을 촉진하여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억압받는 이들의 해방과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루카 4,18-19 참조).

믿음으로, 생명의 책에 이름이 기록된(묵시 7,9; 13,8 참조)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주 예수님을 따르는 아름다움을 고백해왔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증언하도록 부름 받은 곳이면 어디서나, 곧 가정과 직장과 공공 생활에서, 그들에게 부여된 은사와 직무를 수행하면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우리 또한 우리의 삶과 역사 안에 현존하시는 주 예수님을 생생하게 인식하며 살아갑니다.
14. 신앙의 해는 또한 더욱 힘차게 사랑을 증언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 13,13). 야고보 사도는 더욱 강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대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실천이 있소.’ 나에게 실천 없는 그대의 믿음을 보여 주십시오. 나는 실천으로 나의 믿음을 보여 주겠습니다”(야고 2,14-18).

사랑 없는 믿음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믿음 없는 사랑은 끊임없는 의심에 좌우되는 감정에 불과합니다. 믿음과 사랑은 서로 각자의 길을 가도록 해 주면서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외롭고 소외되거나 배척당한 이들을 우리가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존재로 여기며, 그들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삶을 봉헌합니다. 그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이 비치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서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말씀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당부이며 주님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신 그 사랑을 되돌려 주라는 영원한 초대입니다. 신앙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아보도록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분께서 우리의 인생 여정에서 우리의 이웃으로 나타나실 때마다 그분을 도와주도록 재촉합니다. 확고한 신앙으로 우리는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2베드 3,13; 참조: 묵시 21,1)을 기다리면서, 세상에서 하는 우리 일을 희망을 안고 바라봅시다.
15. 생애의 막바지에 이르자 바오로 사도는 제자인 티모테오에게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2티모 3,15 참조) 견고하게 “믿음을 추구”할 것을 당부하였습니다(2티모 2,22 참조). 우리는 이러한 당부가 바로 우리 각자에게 향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우리들 모두 신앙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놀라운 일을 더욱 새롭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평생의 동반자입니다. 현재의 역사 안에서 이 시대의 표징을 바라보도록, 신앙은 세상에서 우리가 모두 부활하신 주님 현존의 살아있는 표징이 되라고 당부합니다. 오늘날 세상에 특히 필요한 것은 주님의 말씀으로 마음과 정신을 비추는 사람들의 신뢰할 수 있는 증언입니다. 이 증언은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과 참 생명,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망에 마음과 정신을 열도록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빠르게 퍼져 나가 찬양을 받고”(2테살 3,1 참조) 이 신앙의 해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우리가 맺은 관계가 더욱 굳건해지기를 바랍니다. 오직 주 그리스도 안에서만 미래에 대한 확신과 참되고 영원한 사랑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은 신앙에 궁극적 빛을 비추어 줍니다.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1베드 1,6-9). 그리스도인은 살아가면서 기쁨도 경험하고 고통도 경험합니다. 얼마나 많은 성인들이 고독 속에 살았습니까!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하느님께 위로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할 때 하느님의 침묵으로 시험을 당하고 있습니까! 삶의 시련은 십자가의 신비를 이해하고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도록 해 주며(콜로 1,24 참조), 또한 신앙이 이끄는 기쁨과 희망의 서광이 됩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12,10). 우리는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죄악과 죽음을 이기셨다고 굳게 믿습니다. 이러한 확신으로 우리는 우리를 예수님께 맡깁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면서 악한 세력을 물리치셨습니다(루카 11,20 참조). 그리고 예수님의 자비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공동체인 교회는 그분 안에서 아버지와 완전히 화해했다는 표지로 영원히 머물러 있습니다.
“행복하십니다, 믿으신 분!”(루카 1,45)이라고 우리가 외치는 하느님의 어머니께 이 은총의 때를 맡겨 드립시다.
로마, 성 베드로 좌에서
교황 재위 제7년
2011년 10월 11일
교황 베네딕토 16세
1. 베네딕토 16세, 교황 즉위 미사 강론, 2005.4.24.,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34호(2005),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9면, 『사도좌 관보』(Acta Apostolicae Sedis: AAS) 97(2005), 710 참조.
2. 베네딕토 16세, 리스본의 '궁전 광장'에서 거행한 거룩한 미사 강론(Homily at Holy Mass in Lisbon’s ‘Terreiro do Paco’), 2010.5.11., 『가르침』(Insegnamenti) VI, 1(2010), 673 참조.
3.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령 「신앙의 유산」(Fidei Depositum), 1992.10.11., 『가톨릭 교회 교리서』(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1(제2판 6쇄), 29-37면 참조.
4.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 임시 총회 최종 보고서, 1985.12.7., II, B, a, 4 Enchiridion Vaticanum, 9, n.1797 참조.
5. 바오로 6세,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순교 1900주년에 관한 교황 권고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Petrum et Paulum Apostolos), 1967.2.22., AAS 59(1967), 196.
6.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AAS 59(1967) 198.
7. 바오로 6세, 자의 교서 「하느님 백성의 신앙 고백」(Sollemni hac liturgia),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순교 1900주년을 기념하는 ‘신앙의 해’ 폐막 미사 강론, 1968.6.30., 『경향잡지』 60권 8호(1968), 6면, AAS 60(1968), 433-445.
8. 바오로 6세, 일반 알현, 1967.6.14., Insegnamenti V(1967), 801.
9.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eunte), 2001.1.6.,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5(제1판 2쇄), 57항, AAS 93(2001), 308.
10. 베네딕토 16세, 교황청에 한 연설, 2005.12.22., AAS 98(2006), 52.
1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한글판, 2011(제3판 4쇄), 8항.
12. 성 아우구스티노, 「믿음의 유익에 대하여」(De Utilitate Credendi), 1,2.
13. 성 아우구스티노, 「고백록」(Confessioni), I,1 참조.
14.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거룩한 전례에 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Sacrosanctum Concilium), 1963.12.4., 10항.
15. 요한 바오로 2세, 「신앙의 유산」 참조.
16. 성 아우구스티노, 「설교집」(Sermo) 215, 1.
17. 『가톨릭 교회 교리서』, 167항.
18.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가톨릭 신앙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아드님」(Dei Filius) 3장;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계시 헌장 「하느님의 말씀」(Dei Verbum), 5항 참조.
19. 베네딕토 16세, 베르나르도회 신학교에서 한 연설, 2008.9.12., AAS 100(2008), 722, DC 105(2008), 827면.
20. 성 아우구스티노, 「고백록」, 13, 1 참조.
21. 「신앙의 유산」, AAS 86(1994), 115.117, DC 90(1993), 1-3면 참조.
22.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신앙과 이성」(Fides et ratio), 1998.9.14., 34, 106항, AAS 91(1999), 31-32, 86-87면, DC 95(1998), 913, 938면 참조.
<원문 Beneductus pp. XVI, Apostolic Letter “Motu Proprio Data” Porta Fidei, 2011.10.11., 라틴어, 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참조>
입력 : 2012.10.10 오후 4:2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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