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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와 교황기를 처음 게양하며-양평본당 곡수리 공소 이야기 - (1)

글 :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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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삶과 종교, Opinion ; 매월 1회, 1,700자 내외 원고. 2017, 08월~2018. 08.)

 
변기영 몬시뇰이 [사랑방]을 열었습니다.  
사랑방 윗묵 구석 구석에 쳐박아두었던 보따리들을 이것저것 내다가 풀어서  
교회와 사회에 혹시라도 도움이 될 것들은 죽기 전 알리려 합니다. [사랑방 출입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양평성당 곡수리 공소의 2016년 여름 이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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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신자들이 20여년 전, 송병수 신부님, 김영장 신부님, 등, 본당 주임신부님들과, 본당신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세운 공소 성당과 다목적 교육관이 불타는 연산홍 치마를 두른듯 얼굴도 붉게 되어, 60여년생 낙낙장송도 질세라 함께, 변기영 몬시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016.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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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면서, 오른 편부터 하느님의 종 권철신 성현의 직계 7대 종손, 한국천주교회 창립선조후손회 회장 권혁훈, 이세시리아 부부, 하느님의 종 이승훈 성현의 8대 외손녀  모녀, 김헬렌과 신혜선 헤드비카 여자 천진회장, 천진암 성지 사무장 겸 연구원, 박물관 편찬실장 세라피나 허관순. 2016.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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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게양대가 없어서, 이재형 회장이 성금을 바쳐 세운 국기게양대에 태극기와 교황기가 휘날리게 되었습니다. 백발의 장희복 공소회장이 만면의 희소를 띠고 있습니다. 2016. 8. 25.
Mr. Lee Jae Hyeong, Leader of Chon Jin Association and Mr. Jang Heuy-Bock, Kock-Soo mission station faithfuls'leader are elevating national flag & Pontificial flag of Holy See with Msgr. Pete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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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게양대가 없어서, 이재형 회장이 성금을 바쳐 세운 국기게양대에 태극기와 교황기가 휘날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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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권철신, 권일신 성현들의 전교로 양평과 여주지역에 복음의 씨가 뿌려진 것을 기념하여, 교육관이 개보수되면서,권일신 성현의 경칭을 따라 만든, 사우거사기념서재(沙右居士 紀念書齋) 석판을, 요한 한기수 공소 총무(전 공소 회장)가 최민성 미카엘군과 함께 서재 현관 입구 외벽에 부착하고 있다. <교구장 방문, 성당 축성을 준비하며> 2016. 9. 30.
  
Mr. Han Ki Soo, leader & secretary general of the Kock-Soo mission station with Mr. Choi Seong Min, volunteer worker are putting a memorial stone of the Msgr. Peter Byon's biblioth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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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Han Ki Soo, leader & secretary general of the Kock-Soo mission station with Mr. Choi Seong Min, volunteer worker are putting a memorial stone of the Msgr. Peter Byon's residential  house for his staff members.
 
교구장 주교님께서, 변기영 몬시뇰의 거처를 위하여 아담하고 조그마하게(25평)신축하여 주신 사제전용 식당겸 여직원들 숙소
에, 권철신 성현의 친척 병조판서의 따님이며, 이벽성조와 혼인한 여류학자 유한당권씨를 기념하는, 유한당권씨기념천학방(柳閑堂權氏紀念天學房) 석판을, 요한 한기수 공소 총무(전 공소 회장)가 최민성 미카엘군과 부착하고 있다<교구장 방문 성당 축성을 준비하며>.2016.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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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수리 공소 성당 청소 지원하러 와서 봉사하던, 양평본당 제대회 봉사단원들, 최혜숙 글라라, 최상순 엘리사벳, 송민재 아녜스 자매들이 성당 청소하다가, 휴식시간에 변기영 몬시뇰과 함께 맛있는 찐 밤고구마로 간식을 하면서, 곡수리공소와 관련된 한국교회 창립사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습<곡수리 공소는 신자들이 200여명가까이 있었으나, 300여년이상 오래되었던 5일장이 사라지고, 많은 교우들은 서울로 이농하여 , 2016년 현재, 공소신자들의 평균 연령이 75세이상 고령으로, 젊은이들이 거의 전혀 없어서, 공소의 성당 청소 관리조차 어려워, 양평본당에서 봉사자들이 와서 지원하고 있다.>(2016. 10월 12일)-향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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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1월 22일 화요일 오전 11시,
주한 교황대사 Osvaldo Padilla 대주교님께서,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님과 함께 양평군 지평면의 곡수리 공소 성당 방문, 축복식 거행!
 

성당 축성과 사우거사기념서재(沙右居士紀念書齋), 유한당권씨기념천학방(柳閑堂權氏紀念天學房), 등 신축 건물과 개보수 시설물의 축복식 및 "하느님의 종 권철신 권일신 기념 표석, 제막식.

2016년 11월 22일 오전 11시에, 주한 교황대사 Osvaldo Padilla 대주교는, 곡수리 성당(양평군 지평면)을 방문하여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와 여러 사제들과 신도들과 함께, 변기영 몬시뇰이 33년간(1984. 12. 31.~2016. 6. 21.) 머물던 천진암 성지에서 오래간만에 새로 옮긴 새 거처, 곡수리 성당 입주 축복식을 거행합니다. 변기영 몬시뇰이 양평군 지평면 곡수리 공소(이재열 신부가 주임을 맡고 있는 양평 본당 관할)로 거처를 옮기도록, 수원교구(교구장 이용훈 주교)에서는 아담한 사제관을 신축하였고, 또, 20여년 전에 가난한 시골 공소 교우들이 피땀으로 건립한 공소 성당을 교구장 주교가 공식 축성하며, 옛 교육관을 개보수하여, 변몬시뇰의 서재로 축복합니다.
 
일찌기 Daveluy 주교가 한국의 Antiochia라고 부르며, 천주교회 요람지로 부르던, 권철신, 권일신, 등 대학자들이 복음을 선포한 양평 지역에, 옛 신앙 선조들을 기억하도록, 기념표석과, 사우거사 권일신 기념서재(沙右居士紀念書齋)와, 사제 식당으로 사용되는 신축 건물도 유한당권씨기념천학방(柳閑堂權氏紀念天學房), 등으로 명명하여, 신축 건물과 개보수 시설물의 축복과, "하느님의 종 권일신 기념 표석(Ad memoriam rei perpetuam,,,,)" 제막, 등을 거행합니다.
 
* 사우거사(沙右居士安東權日身)는, 성오(醒悟), 일신(日身), 직암(稷菴)으로 불리던, 권일신 성현을 당시 선비들이 부르던 경칭으로, [사우]는 성현의 영세 본명 방지거 사베리오(Franciscus de Xavier)의 고향 본관처럼, 그 명칭의 한역에서 따온듯 하며(?), 거사(居士)라는 말은 유림들과 불자들 중에 덕망과 학식이 뛰어나면서도, 벼슬을 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서 고요하고 고결하게 거하는, 학덕과 신망이 출중한 학자들, 특히, 백성과 선비들의 스승다운 대학자를 칭하던 낱말입니다. 
 
1791년, 신해년 말, 천주교 신앙 때문에 체포되어, 무서운 고문을 당하고 유배를 가다가 첫번째 주막 용인 관아(현재의 신갈 驅邑면사무소 마을 관아)의 객사에서 첫주막 밤에, 뒤따라 온 자객들에 의해 타살된 후(직계 5대손 권오규 변호사와 동생 권오진 회장의 가문의 전승에 의한 증언과 1807년 판, 안동권씨 족보 목각본 참조), 장례식 때, 성현의 큰 형, 녹암 권철신 대성현이 관 상판에, "沙右居士安東權日身之柩"라고 명기하므로서, 최종 재확인되었습니다.
 
박학다식하여 학문과 수덕을 좋아하던 권일신 성현은 용문사의 몇몇 기념비석에도 그의 명문장과 함께 이름이 새겨져 있을 정도로, 당대에는 유림들뿐 아니라, 불교 스님들도, 또 정조 임금까지도 존경하며 아끼던 대학자였으나, 양여지간(楊麗之間)에, 사학이치성(邪學而熾)하여, 즉, 양평과 여주 지역에 천주학이 불일어나듯 무성한 것은 권철신과 권일신 형제 학자들 덕망의 영향이라고, 당시 여러 문헌이 밝히고 있듯이, 당대 저명한 성현으로, 생장향 양근면 갈산리에 있던 자택의 서재에는 다량의 소중한 저서들이 소장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방대한 서적들은 모두 1791년 신해년 말과 1801년 신유년 초 봄의 천주교 박해시절에, 천주교를 반대하던 건달패들에 의해 서당과 자택들이 불탈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고 직계 종손들이 전합니다. 이번의 紀念書齋에는 필자가 소장하며 자주 읽고 사용하는 교회역사에 관한 일부 신구서적 약 4,000여권이 우선 이관,장서되었습니다. 30여년 동안 틈틈히 수집한 고문서들은 천진암 성지 한국천주교회 창립사연구소에 그대로 소장하게 하였으며, 앞으로 모두 천진암박물관에 보전될 것입니다.
 
* 유한당 권씨(柳閑堂權氏)는 권일신 성현의 친척으로, 병조판서 권엄의 딸로서, 어려서 양가 부모들에 의하여 이벽 성조와 혼인하였으나, 당시 사정과 관례에 따라, 동거나 부부생활은 거의 어려웠으니, 이벽성조께서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명을 따라서, 두분 형제들과 무술훈련에 집중하던 무술소년으로서, 일찌기 우리나라에 소개된 천주교 서적을 탐독하고서, 1770년 15세 경부터는 천진암 심산궁곡에 입산수도하였습니다. 
 
1779년을 전후하여, 천진암에 입산수도하던 천학도사 광암 이벽 성조께서 天學을 심층 연구한 후, 이승훈, 정약종 형제들과 함께 실천하기 시작하여, 한국천주교회가 창립되던 시절, 포천 시가와 광주 두미에 주로 거하며 수학하던 유한당 권씨는, 모두가 중국에서 들여온 한문으로 쓰여진 천학 책들을, 우선, 12단 기도문을 비롯한 천주교 서적들을 처음 언문(한글)으로 번역하여 정갈하게 베껴서, 즉, 諺譯淨寫하여, 한문을 모르는 상민들에게 전파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丁學術이 저술한, [니벽전]에까지 기록되어 있을만큼, 당시 天學이라고 부르던 천주교를, 포천의 내촌면 화현리 본가와, 광주 두미의 별장에서, 유한당 언행실록, 등을 저술하며, 집안의 노비 가솔들과 평민들을 집으로 불러 모아서 가르치던, 유한당 권씨는 특출난 당시의 젊은 여류 학자이었으며, 천주교 성당이나 시설물이 전무하던 시절, 자택을 天學房으로 삼아, 활약한 한국천주교회 복음전파의 대표적인 한국천주교회 최초의 여성평신도 지도자였습니다.
 
그러기에, 1984년 10월 14일, 로마의 사도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聖요한바오로 2세께서는, 103위 한국 순교성인 축일 첫 대사를 집전하시면서, 많은 추기경, 대주교, 고위 성직자들과 2만 5천여명의 군중들에게(한국 주교단 25명 동석), [,,,남녀 이 평신도들은 마땅히, 한국천주교회 창립자들이라고 여겨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Questi uomini e donne,,,debbono essere considerati, 'Fondatori della Chiesa in Corea',,,]-Msgr. Byon-
 
 
변기영 몬시뇰이 [사랑방]을 열었습니다.  
사랑방 윗묵 구석 구석에 쳐박아두었던 보따리들을 이것저것 내다가 풀어서  
교회와 사회에 혹시라도 도움이 될 것들은 죽기 전 알리려 합니다. [사랑방 출입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입력 : 2016.10.12 오후 3:4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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