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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Chon Jin Am & the Pope John Paul II (1)
글쓴이 Msgr. Byon   / 등록일 : 2012-04-17    (조회 : 2976)

성하께서 제단 십자가에 분향하고 있다. 사실 십자가도 제단 한쪽에 별도로 세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자색 복장을 하신 분들은 대주교님들과 대법관들도 일부 함께 자리를 같이하고 있다. 새 교황성하의 착좌식 미사 봉헌 장면.



미사 후 신자 군중 석을 돌면서 인사와 강복을 내리시기 위하여 무개차로 가시는 순간이다.



교황 요한23세성하의 유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시었다.



전 교황 요한바오로2세성하의 무덤. 매우 소박하고 검소하고 단순하다.



전 교황 요한바오로2세성하의 무덤 정면 벽의 단순한 벽화.매우 소박하고 검소하고 단순하다.



전 교황 요한바오로2세성하의 무덤. 매우 소박하고 검소하고 단순하다.



1983년 2월 26일
한국주교회의 103위시성추진부장 변기영신부가 로마에서, 시성부장관 팔라치니추기경을 예방한 후 3일 후에, 새 교회법 선포식 겸 교황청의 대법관(로마나 로따의 꼰치스또레)들이 교황성하 앞에서 하는 연례선서식에 참석, 교황 요한바울로 2세 성하를 알현하면서, 103위 한국순교자 시성을 간청하였다. 교황성하께서는, 변기영 신부의 손을 한동안 꼭 잡으시고, 이태리어로, [Si, Si, preghiamo, Si. 즉, 그래, 물론 시성해야지, 함께 기도하자, 시성해야지!]하시며 답하시었는데, 단순히 의례적이 아닌, 당신의 마음 속에 이미 한국순교자들의 시성을 간절히 원하고 계시고, 꼭 시성하시겠다는 목자로서의 간절하고 확고한 의지와 결심을 이미 가지고 계심을 나타내시었다.
이 때 성하의 자세는, 단순히 의례적이 아닌, 당신이 마음 속으로 한국순교자들의 시성을 원하고 계시고, 꼭 시성하시겠다는 목자로서 자신의 간절하고 확고한 의지와 결심을 가지고 계심을 나타내시었다. 사실 당시에 한국의 어떤 성직자나 수도자나 신도들보다도 훨씬 더 성하께서는 한국순교자들의 諡聖을 갈망하시고 계셨다.



1983년 2월 26일 변기영 신부가 이날 오전 11시부터 교황청 교황 집무실 옆에 있는 소접견실에서 교황 요한바오로 II세 성하를, 교황청 대법원 대법관 12명과 전속 특별 변호사 약간명과 함께 알현하였는데, 이날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 수정보완한 새 교회법 선포식 겸,10여명의 대법원 대법관들과 변호사들 약간명의 연례 선서식을 하였고, 이 자리에 변기영 신부는 교황 비서실장 대주교의 특별한 배려와 허락으로, 비공식 옵서버로 참석한 후, 난 생 처음 교황님의 손을 잡고, 약 2,3분 정도 인사말씀을 드리는 과정에서, 한국천주교회 순교복자 103위의 시성청원을 말씀드렸는데,정말 뜻밖에도 교황님께서는 의외로,103위 우리 순교복자 시성청원서를 아주 숙지하신 상태로, 당시 국내의 어떤 주교님들보다도 뜨거운 열성과 정확한 역사지식을 가지 목자로 필자는 감격하였다.12시경 접견 후의 대법관들과 성하를 모시고 찍은 기념 사진.(사진을 바라보면서 성하 좌측 뒤로 두번째가 변기영 신부).

2월 12일 시성추진부장 변기영신부가 로마에 가서 교황성하를 뵙고 간청한 후, 한달 후에, 즉

3월 15일에 시성추진위원장 김남수 주교께서 로마에 가셔서 시성부장관 팔라치니 추기경을 뵙고 간청하셨고, 교황성하는 해외 사목방문 관계로 뵙지 못하고 귀국하였고,

4월1일에는 재로마 연락관 김진석 신부를 윤민구신부로 교체하는 국내 김남수 주교의 임명서로 시성성에 등록이 되어 윤신부가 연락관이 되었다.(103위시성추진부장 변기영 신부가 로마 연락관 교체를 건의하게 된 것은, 아직 학위논문을 마치지 못하고 개인 집에 하숙하고 있던 김신부는 시간에 쫒기고 있었고, 본국과의 연락이 어려웠고, 윤신부는 이미 학위논문을 마친 상태로 시간이 있었으며, 사제들의 기숙사에 머물고 있어서, 오히려 본국과의 연락도 쉬웠기 때문이었다).그리고 또 한달 후에 즉,

4월 20일에는 한국 교회의 어른이신 김수환 추기경께서 로마를 방문하여 21일에 교황성하를 뵙고 시성을 간청하셨고, 4월 26일에는 시성부장관 팔라치니 추기경을 뵙기로 예약되었다고 서울 시성추진부에 로마에서 국내에 연락이 왔다. 윤신부(같은 해 4월1일, 시성부에 등록, 업무시작)와 단테 변호사가 시성부와 교황성하의 근황에 대하여 종종 알려주고 또 필자도 자주 전화로 점검하고 있었다. 그해

5월 10일, 시성을 위한 기적심사관면이 시성부에서 결재가 되어, 5월 15일경이나 20일경에 성하의 결재와 동시에 발표되리라고 로마에서 연락이 왔었으나, 대법원의 최종회의와 성하의 결정은 대법관들과 함께 교황성하께서 친히 임석하시어 확정하시게 되었으니, 한국순교복자 103위 시성을 위한 기적심사관면 결정과 발표는

6월9일이었고, 국내에는

6월 10일에 공식 발표되었다.



1983년 6월 9일, 오전11시부터,교황궁에서 요한바오로2세 성하께서 친히 임석하시는 가운데, 개최된, 한국순교복자103위 시성을 위한 기적심사관면을 위한, 대법관(Romana Rotta Concistori)들과 시성부 위원 대주교들 및 관계 추기경들의 최종 연석 합동회의. 사진은 시성부장관 팔라찌니 추기경의 보고 및 기적심사관면 건의 장면.



1983년 6월 9일, 오전11시부터,교황궁에서 요한바오로2세 성하께서 친히 임석하시는 가운데, 개최된 한국순교복자 103위 시성을 위한 기적심사관면을 위한, 대법관(Romana Rotta Concistori)들과 시성부 위원 대주교들 및 관계 추기경들의 최종 합동 연석회의에서 기적심사관면 건의에 적극 찬성하는 위원 대주교들의 발언 장면



1983년 6월 9일, 오전11시부터, 교황궁에서 요한바오로2세 성하께서 친히 임석하시는 가운데, 개최된 한국순교복자 103위 시성을 위한 기적심사관면을 위한, 대법관(Romana Rotta Concistori)들과 시성부 위원 대주교들 및 관계 추기경들의 최종 합동 연석회의 중에 시성부장관 추기경의 건의와 위원 대주교의 찬동에 이어 변론을 시작하는 단테변호사의 발언 장면(당일 단테변호사는 3차까지 발언하였다)



1983년 6월 9일, 오전11시부터, 교황궁에서 요한바오로2세 성하께서 친히 임석하시는 가운데, 개최된, 한국순교복자 103위 시성을 위한 기적심사관면을 위한, 대법관(Romana Rotta Concistori)들과 시성부 위원 대주교들 및 관계 추기경들의 최종 연석회의 중에 시성부장관 추기경의 건의와 위원 대주교들의 찬동 발언에 강력히 반대발언을 하는 몬시뇰. 이 몬시뇰을 흔히, \"마귀의 옹호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1983년 6월 9일, 오전11시부터, 교황궁에서 요한바오로2세 성하께서 친히 임석하시는 가운데, 개최된, 한국순교복자103위 시성을 위한 기적심사관면을 위한, 대법관(Romana Rotta Concistori)들과 시성부 위원 대주교들 및 관계 추기경들의 최종 합동 연석회의에서 기적심사관면 건의에 적극 찬성하는 위원 대주교들의 재발언 장면



1984년 10월 14일 성 베드로 대성당 103위 성인 첫 축일 대미사



1984년 10월 14일, 로마 성 베드로대성당에서 교황 요한바오로2세 성하의 주례로 한국순교성인 103위 첫 축일미사를 김수환 추기경님과 한국의 모든 주교님들과 프랑스의 많은 주교님들과 함께 한국신도들 약 18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한 후, 오후에는 교황성하의 알현이 있었다.



본래 국내에서 거행된 103위시성식으로 새로이 시성된 103위 축일은 9월20일로 정해졌고, 그 첫 축일은 로마 성 베드로대성당에서 교황이 주례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10월 14일로 변경하여 거행하였는데,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모르는 성직자들이 한국에는 대부분이다. 10월 14일은 요한바오로2세께서 만 6년전 교황으로 등극하신 날이었다.



요한바오로2세성하께서는 한국순교성인103위를 당신 교황직무 수행의 주보로 생각하시고 가장 열심히 공경하셨으며, 15일에 하루 마지막 점검을 하신 후 16일에는 고국 폴랜드에 3번째 방문길에 오르시게 되어 있었다. 아직 민주화가 되기 전 무서운 공산국가였던 모국방문 길을 한국순교성인들과 함께 가시기 위해서였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 순교자들이 사형집행장을 향하여 걸어가던 마음으로, 한국순교성인들과 함께, 성하께서는 마피아단의 본거지 시칠리아와, 공산 게릴라들이 난무하는 남미를, 반대의견을 무릅쓰고, 방문하셨다.



1991년 12월 4일

한국천주교회창립선조시성추진을 위해 로마를 방문한 변기영신부가, 천진암대성당 터닦이 공사가 다되었음을 보고하고,이에 기여한 이들, 특히 비신자로서 유공자들을 성하께 소개하려 하고 있다.



한국천주교회창립선조시성추진을 위해 로마를 방문한 변기영신부가, 천진암대성당 터 공사에 기여한 비신자 최무웅사장을 성하께 소개하여 알리고 있다.


E ≪Gioia≫. Questa parola-cardine del Magistero delPastore Universale riempie ancora di piu i cuori in questi giorni cosi intensi. Il profumo dell'aura pasqualesi fa ancora piu delicato e interiormente penetrante per la lieta ricorrenza del genetliaco del Santo Padre Benedetto XVI. E festa. E la festa della bellezza, della grandezza edella chiarezza della Fede. Di quella Fede che con occhiridenti e dolcemente paterni Egli riaccende nel cuore e nell'intelligenza dei credenti e di quanti a Lui guardano con speranza. E la festa di Pietro. E la festa del Pastore che ti comunica una freschezza interiore che avverti anche fisicamente. E festa. Una festa che ha il sapore della famiglia,l'aroma dell'incenso della parrocchia, i confini dell'universalita. m.a. (ⓒL'Osservatore Romano - 15 Aprile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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