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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릉 오죽헌에 신비로운(오죽) 대나무 꽃이 피었습니다(2020.10.23).
글쓴이 Msgr. Byon   / 등록일 : 2020-10-24    (조회 : 2502)

강릉 오죽헌에 신비로운(오죽) 대나무 꽃이 피었습니다(2020.10.23).



강릉 오죽헌에 신비로운(오죽) 대나무 꽃이 피었습니다(2020.10.23).



강릉 오죽헌에 신비로운(오죽) 대나무 꽃이 피었습니다(2020.10.23).



강릉 오죽헌에 신비로운(오죽) 대나무 꽃이 피었습니다(2020.10.23).



강릉 오죽헌에 신비로운(오죽) 대나무 꽃이 피었습니다(2020.10.23).



강릉 오죽헌에 신비로운(오죽) 대나무 꽃이 피었습니다(2020.10.23)(자세히 보면 싹이 보입니다).



강릉 오죽헌에 신비로운(오죽) 대나무 꽃이 피었습니다(2020.10.23).



강릉 오죽헌에 신비로운(오죽) 대나무 꽃이 피었습니다(2020.10.23).


강릉 경포대 오죽헌에 신비롭다는 대나무 꽃, 

오죽 꽃(烏竹花)이 피었습니다(2020.10.23). 

 

100여년 만에 한번씩 핀다(60년~120년)는 오죽 꽃은 얼핏 보기에는 꽃같지가 않아서, 자세히 꼼꼼히 한참을 들여다 보아야 알 수가 있읍니다. 마치 쭉정이 호밀 이삭 말라버린 것 같아서, 아마 꽃 중에 채색 꽃잎이 전무하고, 향기도 맡을 수가 없으며, 봉오리도 너무나 허술(?)하고 엉성하여(?), 정말, 가장 꽃같지 아니한 작고, 고요하고, 좀 허술하고(?) 싱거운(?) 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꽃술이 서너개씩 나온 봉오리도 있어서 꽃은 꽃임이 분명한데, 상하 좌우 가지들의 대나무 잎은 그대로 푸르게 달려 있읍니다. 집 주인도 보기 어려운 꽃일 수 밖에 희귀한 꽃입니다. 향내도 거의 없고,(?) 모양도 거의 정확하지 않은 무형, 무색, 무취, 무향,(無形 無色 無臭 香)의 꽃도 아니고, 잎도 아닌 듯하나, 꽃술이 한 두 개씩 이나마  나와 있는 것을 보면 꽃은 꽃인데, 우리가 흔히 보는 꽃같지 않은 꽃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소리없이 모양없이 100여년에 어쩌다가 한번 피어 보인다는 이 오죽화가 허세와 허영과 사치와 향락에 도취되어 인생을 낭비하는 이 세대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 도인다운 면모가 있어 보입니다. 임진왜란을 계기로 뛰어난 詩文을 많이 남긴 고산 윤선도의 五友歌 중에 그의 벗 '대나무'에 관한 한줄이 기억납니다.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러고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 <고산 윤선도 작 오우가 중에서 일부 발췌>

 

의역 시도 참고: - 대(竹)는 나무가 아니라서, 나무로서의 최고 영예라 할 수 있는 큰 사찰이나 왕궁의 기둥이나 대들보로, 즉, 국가의 동량 (棟樑)으로, 宰相으로 쓰일 기회도 없고, 그렇다고 전답의 농지 경작에 나가 일하는 民草들의  제거 대상인 잡풀도 아닌데, 좌우 상하로 굽고 휘며 자라는 넝쿨이나 잡목들과도 같지 않고, 항상 꼿꼿이 아주 바르고 곧게 하늘만을 향하여 성장하는 체질은 어디서 누구한테 배우고 익혀서 누구를 닮아서 저렇게 으젖한가? 그러면서도 속은 텅텅 비어 아쉬움만이 가득할텐데도, 그 청념한 청빈과 무욕(無慾)의 정신과 기질과 생활의 저력은 어떻게 가능한가 ?! " 2020/10/24/ Msgr. Pete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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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경포대 오죽헌에 신비롭다는 대나무 꽃, 오죽꽃(烏竹花)이 피었습니다(2020.10.23).

글 :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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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경포대 오죽헌에 신비롭다는 대나무 꽃, 오죽 꽃(烏竹花)이 피었습니다(2020.10.23). 

 

100여년 만에 한번씩 핀다(60년~120년)는 오죽 꽃은 얼핏 보기에는 꽃같지가 않아서, 자세히 꼼꼼히 한참을 들여다 보아야 알 수가 있읍니다. 마치 쭉정이 호밀 이삭 말라버린 것 같아서, 아마 꽃 중에 채색 꽃잎이 전무하고, 향기도 맡을 수가 없으며, 봉오리도 너무나 허술(?)하고 엉성하여(?), 정말, 가장 꽃같지 아니한 작고, 고요하고, 좀 허술하고(?) 싱거운(?) 꽃으로 보입니다. 지금은 경포 앞바다의 드넓은 청파와 파도소리 들리는 낮은 언덕 등지고 있던 외딴 마을에서 아들 율곡 선생을 키우던 사임당 신씨의 허술한 시골집과도 같은 오죽이 있던 낮은 대나무 울타리의 임진난  이전의 그 집이 연상됩니다.

 

그런데, 꽃술이 서너개씩 나온 꽃같지 않은 꽃봉오리도 있어서, 꽃은 꽃임이 분명한데, 상하 좌우 가지들의 대나무 잎은 그대로 푸르게 달려 있습니다. 집 주인도 보기 어려운 꽃일 수밖에 없는 희귀한 꽃, 향내도 거의 없고,(?) 모양도 거의 정확하지 않은, 무형에 가까운 자유형(?), 무색, 무취, 무향(無形 無色 無臭 香)의, 꽃도 아니고, 잎도 아닌 듯하나, 꽃술이 한 두 개씩이나마  가늘고 작은 머리를 내밀고 있는 것을 보면 꽃은 꽃인데, 우리가 흔히 보는 꽃같지 않은 꽃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소리없이 별로 모양도 없이 100여 년에 어쩌다가 한번 피어 보인다는 이 오죽화가, 허세와 허영과 사치와 향락에 도취되어 인생을 엄벙덤벙 탕진하며 낭비하는 감투병 중환자들이 광난의 춤을 추며 발광하는 우리세대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 과묵한 大道人 다운 면모가 있어 보입니다. 임진왜란을 계기로 뛰어난 詩文도 많이 남기고 간 孤山 윤선도의 五友歌 중에, 그의 벗 '대나무'에 관한 한 줄이 기억납니다.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러고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 <고산 윤선도 작 오우가 중에서 일부 발췌>

 

의역을 시도한 일펀 단상문 참고 

 

대(竹)는 나무가 아니라서, 나무로서의 최고 영예라 할 수 있는 지위, 큰 사찰이나 왕궁의 기둥이나 대들보로, 즉, 국가의 동량 (棟樑)으로, 宰相으로 쓰일 기회도 가망도 없고, 그렇다고 전답의 농지 경작에 나가 일하는 民草들이 부지런히 뽑아버리는 제거 대상인 잡풀도 아닌데, 좌우 상하로 거름기를 따라 굽고 휘어가며 이리저리 칼 자루나 돈주머니 쫓아서 살아가는 넝쿨이나 잡목들과도 같지 않고,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한결같이 오로지 하늘뜻만을 우럴어보며 살아가던 헌오죽 사임당 신씨의 멋과 기백을 알리는 꽃이 아니랴?!!

 

하늘이 무심한듯 날이 가물거나 땅도 습기가 사라져 목이 타들어가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항상 꼿꼿이 아주 바르고 굳세게, 곧게 곧게 하늘만을 향하여 성장하는 체질은 어디서 누구한테 배우고 익혀서 누구를 닮아서 저렇게 무섭도록 으젖한가? 그러면서도 속은 텅텅 비어 아쉬움만이 가득할텐데도, 그 청념한 청빈과 무욕(無慾)의 정신과 기질과 생활의 저력은 어떻게 가능한가 ?! 

 

분명히 오죽 꽃이 드물게나마 어쩌다가 피어서 우리에게 보이며 하고 싶은 말은 무슨 길조의 예언이나 대박의 희소식보다도, 깔끔하고 깨끗하고, 오롯한 대나무의, 더구나 한 여름에도 바꾸지 않고 늘 입고 살던 검은 치마와 저고리를 두르고, 텅빈 주머니 속과 몸 속을, 마치 보물 창고나 보석 상자처럼, 지키고 아끼며 가꾸고 위하던 오죽헌의 사임당 신씨의 불변의 모습이 아닐까? 태백산맥을 뒤로 하고 동해 큰 바다를 안고서 하늘만을 올려다보며 천명(天命)에서 눈길을 놓칠세라 한시도 촌각도 소홀히하거나 마음 놓지 않고, 아들 율곡을 키우며 가르치던 그 때의 사임당의 본 모습을 오늘의 우리에게 재현하는 모습으로 느껴지는 것은 사상부재의 난국을 살고 있는 민초들의 과민이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만,,,?!  2020/10/24/ Msgr. Pete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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