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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 5.16 광장에서 거행된 한국순교복자 103위의 시성식 광경
글쓴이 Msgr. Byon   / 등록일 : 2017-07-18    (조회 : 1760)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 5.16 광장에서 거행된 한국순교복자 103위의 시성식 광경. 당시 언론과 보도기관에서는 100만여명으로 보도하였으나, 필자는 55만명~60여만명으로, 내한한 성청 인사들에게 보고 하였었다(Sua Santita Giovanni Paolo II aveva concelebrato la messa per la canonizzazione dei 103 Beati martiri coreani, con molti Cardinali, Arcivescovi, Vescovi, sacerdoti e fedeli cattolici - circa 500.000 - a Seoul il 6 maggio 1984. Per quella canonizazione, il Rev. Byon, rettore di Chon Jin Am, il luogo natale della Chiesa, aveva servito per 5 anni (1980~1984) come segretario esecutivo generale della commissione episcopale per la canonizzazione dei 103 Beati Martiri coreani.>(Photos by Baeck-Nam-Shick).









희대의 사기꾼으로 몰렸던,한 시골교구 출신 젊은 사제의 실로 고달프고 고독한, 
그러나, 한국교회 역사상 최대의 기쁜 소식이!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 5.16 광장에서 거행된 한국순교복자 103위의 시성식 광경.당시 언론과 보도기관에서는 100만여명으로 보도하였으나, 필자(담당 변기영 신부)는 55만명~60여만명으로, 내한한 성청 인사들에게 보고 하였었다- Rev. Peter Byon.(Sua Santita Giovanni Paolo II aveva concelebrato la messa per la canonizzazione dei 103 Beati martiri coreani, con molti Cardinali, Arcivescovi, Vescovi, sacerdoti e fedeli cattolici - circa 500.000 - a Seoul il 6 maggio 1984. Per quella canonizazione, il Rev. Byon, rettore di Chon Jin Am, il luogo natale della Chiesa, aveva servito per 5 anni (1980~1984) come segretario esecutivo generale della commissione episcopale per la canonizzazione dei 103 Beati Martiri core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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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 by Baeck - Nam-Shick).

희대의 사기꾼으로 몰려서 놀림감이 되었던,
한 시골 교구 젊은 사제의 실로 고달프고,
고독한, 그러나 한국교회 역사상 최대의 기쁜 소식,
 
[103위 시성 기적심사 관면확정] 발표가,,,! <1983. 6. 12. 오전>

1982년 봄부터 한국천주교회 주교회의 산하 순교자시복시성추진위원회는 당시 교황대사 Francesco Monterisi 대주교의 권고를 따라 위원장 김남수 주교 명의로 2차례나 103위 순교복자들의 시성을 위하여, 기적심사 관면을 교황청 시성성에 요청하였다. 동시에 관련 문서들을 수차례 보내고 있었다.
 
 로마를 방문한 103위 시성추진부장 변기영 신부가 1983년 2월 26일, 교황 요한바오로 2세를 알현하면서, 103위 시성을 간청하자, 교황께서는 변기영 신부의 손을 한참 동안 힘주어 꼭 잡고, “그래, 시성해야지, 아무렴, 기도하자 ! 나도 기도할께 ! (Si, si, preghiamo, si, preghiamo!)" 하셨다. 점심 먹으러 가서, 동석했던 Giulio Dante 변호사에게 자랑삼아, “교황께서, 오늘, 우리 103위 복자들을 시성해주신다고, ‘Si, ! Si !' 하셨다고 말하자, 함께 식사하던 단테 변호사와 당시 로마 연락관 김진석 신부는, 시쿤등해 하며 쓴 웃음을 지으면서, “ 교황님은 모든 간청에 대하여, 결코, ‘No' 안된다’는 말씀을 사용하지 않으시니, 외국에서 오는 방문객의 간청에 예의상 하는 말씀일 뿐”이라며, 믿지 말라고 하였다. 신부가 교황님 말씀을 안 믿으면, 누구 말을 믿느냐고 변신부는 항변하였으나, 모자라는 촌 놈으로 취급될 뿐이었다.
 
3월 5일에 귀국하여, 3일 후, 여러 주교님들과 각 교구 총대리 신부들과 수도회 장상 수녀들까지 약 50여명이 정능 수녀원의 신축 교육관에 모여, 103위시성추진부장 변기영 신부의 시성추진 로마 현장 점검 귀국 보고회를 가졌다. “교황께서, 우리 103위 복자들을 시성해주신다고, ‘Si, Si' 하셨다고 말하자, 모두들 큰 소리를 내며 웃었고, 심지어 수녀들까지도 깔깔대며 웃었다. 웃지 않는 주교님들이나, 신부, 수녀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기쁜 소식이라고 웃는 것이 아니라, 말이 안된다는 표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교회 역사에, 100여명의 복자들이 한번에 시성한 예가  없었기 때문이고, 교황님의 말씀은 의례적일 뿐이라고 모두가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교님(한국천주교회200주년준비위원장, 경갑룡 주교) 한 분은, “변신부는 그래, 교황님의 그 말씀을 그대로 믿어?!”하였다. “물론입니다. 신부가 교황님 말씀을 안믿으면 누구 말을 믿습니까 ?” 하자, “에끼, 이 사람아!, 변신부, 너무 순진하군! 참 딱도 하군 !”하며, 모두들 다시 한번 크게 웃었다. 변신부는 이렇게 웃음거리가 되었다. 내 귀에 들릴 정도로, 한쪽  옆에서는, "이태리 유학을 안해서", 잘 못 알아듣고 온 거야! 하며, 잠시 회의장은 비웃음과 조롱 범벅이 되어, 어수선하였다. 그러나, 원로 오기선 신부님만이 일어나서 내 편을 들었다. “교황께서 말씀이라도 그렇게 해주시는 것만도 고맙지 뭐 !” 당시 가톨릭신문에서는,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면, 내년에 103위 복자들의 시성이 가능하다”는 변신부의 귀국 인터뷰 내용을 빡스기사로 무게있게 보도하였다. 그러나 그 진의는 좀 의아하였다.  
 
그러나 교황님의 손을 잡은 변신부의 사진이 인쇄물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서울의 열성파 신부님들(오기선 신부님, 김창석 신부님, 박희봉 신부님, 등)의 극성에 들볶이다 못해, 김남수 주교님은 바로 3월 15일에 로마로 갔으나, 교황성하는 만나뵈올 수가 없었고, 시성성 장관 Palazzini 추기경만 뵙고 돌아왔다. 이어서 4월 20일 경, 김수환 추경님은  로마로 가서, 늦은 저녁이었는데도, 아예 비행장에서  바티칸으로 직행하여(?) 교황님께 103위 시성을 열망하는 한국 신자들의 간청을 전하였다고 국내에 알려 왔다.
 
그래도 103위 시성 가능성을 부정하며 반대하던 국내의 저명한 성직자들은 아주 공개적으로, ‘수원교구 저 미친 놈, 변기영 신부가 아주 사기꾼이야 ! 103명이 어떻게 한번에 시성된다는 말이냐?’고 공박하며, 유관 모임마다, 자리마다, "희대의 사기꾼"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심지어 기적심사 관면 확정 소식이 전 세계에 발표되던 6월 10일 전 날 저녁에도, 서울  큰 성당의 공개 강연회에서까지, 수원교구 사기꾼 신부 이야기가 주제였다. 신자들은 속지 말라는 것이었다. 다음 날 저녁 로마의 장익 신부가 변신부에게 헐레벌떡 숨가뿌게 국제전화로, "기적심사 관면, 추기경, 대주교, 대법관들 전체 총회에서 가결, 1시간 후, 교황 성하 즉시 서명 확정 발표" 소식을 알려왔다. 밤늦도록 TV와 신문사 기자들의 각종 문의 전화와 자신들이 주교회의 사무처로, 시성추진 사무실로 몰려와서, 로마와 파리에서는 대표 추기경들이 여러 주교들과 함께 배석하여, 성대히 이미 발표하였고, 각 나라 언론도 이 놀라운 소식을 크게 보도하는데, 당사자인 한국주교회의는 왜 공식발표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느냐고 야단이었다.
 
이 큰 소식은, 로마와 파리에서 처럼, 서울에서도 마땅히 한국의 모든 주교님들이 모인 가운데 교회의 어른이신 김수환 추기경님이 발표해야만 할 큰 기쁜 소식이었으나, 당시 김추기경님은 제주도 글라라 수녀회 피정 지도 중이라서 오실 수 없다고 하시고, 주교회의 의장 윤공희 대주교님은 광주대교구 사제 피정 지도 중이라 도저히 자리를 뜰 수없다고 하시고, 위원장 김남수 주교님도 울산 예수성심수녀회 피정 지도 중이라서 역시 서울에 갈 수가 없으니, 주교회의 사무총장 정은규 신부나 시성추진부장 변기영 신부가 발표토록 하라고 지시하셨다. 그러나 정은규 신부는 발표후 기자들의 질의응답에 답하기가 좀 어렵다면서, 4 년간 시성추진 실무를 담당한 변기영 신부가 발표할 수 밖에 없다고 하며, 변신부에게 미루었다. 엄청난 새 소식을 발표하는 공식 현장은 이렇게 너무나 쓸쓸하였다.
 
그래서, 위원장 김남수 주교의 재확인 명령으로, 부득이 6월 12일 아침 TV와 기자들의 카메라 앞에는, 하루 전까지만 해도, 103명이 함께 시성된다고 떠드는 사기꾼이라고 공격받던 103위시성추진부장 변기영 신부가, 실로 외롭게 나서서 103위 시성 기적심사관면 확정 소식을 한국주교회의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시성추진과정에서 가장 애를 먹이며, 수십년씩 걸리는 과정이 기적 심사인데, 이 과정을 관면받으면, 사실상 시성은 확정된 바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각 나라 언론에서 2천년 교회 역사에 유례가 없는 초유의 이 놀라운 소식의 주인공이 되는 한국 교회의 공식 발표 현장에는 어떤 주교님이나, 사제들도 참석함이 없이, 시성부 직원들만 데리고, 기자들 앞에 나서게 된 것이다.!, 103위시성 추진부장의 초라한 사무실(당시 장충동 분도회관 2층) 밖에는 마땅한 발표 장소조차 없었다.
 
한국에서 103위 시성 확정 소식은 이렇게 정말 외롭게 발표되었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은 약 1시간 가량 걸렸다. 사기꾼 소리의 연속 사격이 시작된지 3개월 (3월초부터 6월초까지) 후의 실로 의외의 기적적인 고독한 발표였다. 당시 유일한 교회 주간지 가톨릭신문은, 울산에서 수녀원 피정 지도하고 계신 위원장 주교님 명의로 6월 12일 자 발표공문이 나온 것처럼 하여, 이를 인용한 것으로 만들어, 1주일 후에 늦게라도 우선 보도하기로 하였다.
 
이듬 해, 1984년 12월 초, 모든 일이 끝나서, 위원회 해산 후, 주교회의 사무총장, 정은규 신부한테서 전화가 왔다. 사무실에서 만나서 직접 본인에게 주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천주교회 주교회의 의장 김수환 추기경과 주교회의 200주년 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윤공희 대주교의 공동명의로, 주교회의 순교자 시복시성추진부장 변기영 신부에게 주는, 돌에 새긴, "감사패"였다. "여기 지대한 공헌을 하였기에" 라는 말은, 당시 주교회의 사무총장 정은규 신부가 추가하자고 제안하여 만들었노라고 내게 전하였다.
 
수원교구 시골 촌놈이, 서울 주교회의에 불려가서,주교님들 심부름하느라고, 서울과 로마와 국내 전국 교구에까지 동분서주하며, 일부 선후배 사제들한테, 5년간 정신 못차리게 들볶이며, 시달리며, 혼이 난 품값이었다. 

미리내 본당에서 1957년 9월 27일, 혼자서 영세한, 해마다 9월 27일이 되면, 교황성하의 103위 순교복자 시성확정 발표를 되새기게 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103위 한국순교복자 시성을 위한 기적심사 관면을 확정 발표하신 것은1983년 6월 11일(로마시간)이지만, 교황청 여러 관련 부서에서 여러 절차를 마치고, 최종적으로 103위 시성을 확정하는 교서(BULLA)를 발표하신 날은, 공교롭게도, 그 해, 1983년 9월 27일, 나의 영세 기념일이었다. -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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