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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혈순교자들의 마지막 숨결소리

Bloodless Martyrs' Breathless Voices

Bonum et Pax(선과 평화), ♩♬♪ 9월 순교자 성월에, 순교자 황사영 묘 참배를,,,!

글 :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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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성탄절에도 들려오는 비명의 한맺힌 서글픈 음악에도
세계의 우리 모두는 귀를 막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사하라 사막의 모래 바람 무릅쓰며
에집트로 피난길 걸어가던 10대 후반의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의
모래 발자욱 소리가 아닌가 ?!

*************

이주민들을 총칼의 무력으로 그들이 살던 마을,
그들의 땅과 그들의 집에서 내쫓아,
강제로 떠나게 하는 것은 이 시대 우리 모두의 불의이며,
또한 이주민 저들이 이주도중에 바다에서 항해 중 익사하는 것을
방관하고, 더우기 방치하는 것은 더욱 큰 불의가 아닌가?!.

-교황님 말씀,2019/12/19, 로마, 바티칸의 목소리- Msgr. Byon 역술 소개-

입력 : 2019.10.03 오전 7:34:43
Bonum et Pax(선과 평화),
 
Verum et Justum(진리와 정의),
 
자유와 진실(Freedom & Truth)은 성탄절의 멜로디 !
 
♪ / ♪ /
 
 善은 平和의 어머니며, 평화는 선량한 사람의 딸이다.
그래서 착한 사람들에게는 기쁨을 주는 귀여운 딸과 같은 평화가 있다.
 
眞理는 正義의 아버지며, 정의는 진리의 정직한 맏아들이다
그래서 진리가 없는 곳에는 용감한 아들같은 정의가 있을 수 없으며,
또한 自由가 없는 곳에는 眞實도 있을 수가 없으니,
거짓과 허위조작의 무법천지일 뿐이다.
 
淸貧(Poverty)은 겸손한 사람들의 재산이오 영광의 면류관이다.
주막거리 마구간 말구유에 성탄하시는 아기 예수님의 첫 울음소리는
 오늘도 지금도 은은히 울려퍼지는 성탄절에 가장 먼저 찾아온
천사들과 목동들같은 하객들의 황홀한 합창곡이로다 ! !
 
[성탄절의 합창 소리] - Bonum et Pax(선과 평화), Verum et Justum(진리와 정의),
자유와 진실(Freedom and Truth), Poverty & humility(가난과 겸손) -
 
<핵폭탄과 대륙간 탄도 미사일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천지가 진동할듯 하늘이 무너질듯 하다. 그래도 노동의 댓가 만큼만 살지 않고 분에 넘치는 오락과 유흥과 사치와 향락에 도취하여, 고속도로마저 좁다고 주차장화 하려는 태평성대 같은 성탄절이 되진 말아야 할텐데 !
 
공짜풍요도 고마운 줄 모른 체 투덜대는 [해방의 자유 민주 기차]에 오른 무임 승차객들에게 고함소리 지르며 돈 자루 어깨에 메고 동분서주하는 추념 거두는 발자국 소리 요란한 강산에도, 주막거리 주막집 주차장 마구간 말구유 위에 비추는 별빛은 모른체 하고, 성탄절을 제일 먼저 반기는 호텔 유리창과 백화점 현관 앞엔 어김없이 금년에도 제일 먼저 찾아온 아기 예수 성탄절에,
 
천상천하 하객들의 합창 소리는 들리지 않는지, 아직도 못들은체 하는 자유불감증 중증환자 마을 주막거리 마구간 말구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까맣게 잊었는지,,,,
 
개 제 버릇 남 주는 법이 없다더니, 이웃나라 뻔돌이들의 언어도단 같은 육두문자 헛소리와, 주머니 벌리며 채워 달라는 욕심꾸러기 부자 나라들의 옴살도 모른체 하며, 성탄절 저 노래를 어떻게 우리들만이 부르며 지내랴 ?! 북녘 땅과 요동의 동쪽 이른 바, 요즈음 부자인체 하며, 돈주머니 만지작거리는 대국과, 바다 건너에서 만지작 거리던 칼 자루를 아직도 놓지 못하고 잊지 못하는듯 하는 일본에도, 2019년 아기 예수 성탄절의 천상천하 하객들 합창소리가 울리고, 들리기를 기도하며, 묵상하고, 말구유의 의미와 가치와 교훈을 되새겨본다. 
[말구유없는 아기 예수 탄생]은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다 !>  Msgr. B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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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추 홍복산 독막골(가막골) 끝 자락에 있는
 
9월 순교자 성월에, 순교자 황사영 묘 참배를,,,!
(2019.09.23) <장흥(長興)면 부곡리 가막골 선영의 순교자 황사영(黃嗣永) 진사(進士) 묘>
 
변기영 몬시뇰, 박국장, 고실장, 허실장, 송추 홍복산 독막골(가막골) 황사영 묘 참배(2019.09.23)


 
변기영 몬시뇰, 박국장, 고실장, 허실장, 송추 홍복산 독막골(가막골) 황사영 묘 참배(2019.09.23)


 
변기영 몬시뇰, 박국장, 고실장, 허실장, 송추 홍복산 독막골(가막골) 황사영 묘 참배(2019.09.23)


 
변기영 몬시뇰, 박국장, 고실장, 허실장, 송추 홍복산 독막골(가막골) 황사영 묘 참배(2019.09.23)
 

장흥(長興)면 부곡리 가막골 선영의 순교자 황사영(黃嗣永) 진사(進士) 묘(석제(石製)에서 십자가 형 돌 배치 및 소형 백자 항아리 발견돼) 

주문모 신부로부터 Alexius 본명으로 세례를 받은 황사영 진사는 주신부님과 거처를 같이 하며 전교에 힘쓰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제천 산골 배론 토굴에 몸을 숨기고는 북경 주교 앞으로 보내는 백서(帛書)를 썼다.

그러나 도중에 밀사였던 황심(黃沁)이 잡히면서 황사영도 체포되어,서울로 압송된 후, 달포 남짓하게 온갖 고문을 당한 후, 12월 초에 서소문 네거리에서,양 팔과 양 다리와 목에 밧줄을 감고 사방에서 말 4필이 동시에 달리게 하여,온 몸을 여섯으로 찢어죽이는 능지처참형의 육시를 당하여 순교하였다(26세).한국의 순교자들 중 가장 잔인하고 처참한 형벌로 순교하였다.천주교 때문에, 천주교 신앙 때문에, 천주님 때문에, 한국 교회사에 가장 무서운 박해와 고통을 받고 처참하게 죽은 순교자 황진사와 그 가정은 1801년 신유박해를 마감하는 수난의 순교가정이었다.
 
순교자 황진사보다 3살 위의 부인 丁命淵 마리아는 文度公 요한 丁若鏞 承旨의 친 조카딸이며, 광암 이벽 성조의 친 외조카 딸인데, 1801년 제주도 모슬포 대정읍으로 유배되어, 39년간 官奴로 종살이 하다가 68세에 세상을 떠났고, 아들 黃慶憲은 1801년 3살 때, 제주도로 유배가는 어머니와 함께 가다가, 추자도에 강제로 떨어뜨려, 마음착한 어부 吳씨가 거두어 길러서, 추자도에서 죽을 때까지,제주도에서 유배생활하는 어머니를 한번도 뵙지 못하고,아들 경헌이도 추자도에서 세상을  떠났다.순교자 황진사의 어머니 전주 이씨는 1801년 거제도로 유배되어, 문전걸식하는 걸인으로 지내다가 굶어서 거제도에서 핍진하여 세상을 떠났다.
 
순교자 황진사가 능지처참형으로 처형되어 온 몸이 찢어져 사방에 흩어진 살덩이와 의복 조각들을 그 벗들이 모아, 창원황씨 종종산 선영인 양주군 장흥면 부곡리 가마골(홍복산 밑)에 묻혔는데,1980년 여름, 종친회의 17대손 황용호(黃龍浩, 동국대, 경상대)교수와 당시 대구대교구에서 발행하던 가톨릭시보사의 고상국 기자가 자료를 추적하며 변기영 신부(당시 주교회의 200주년 주교특별위원회 사무국장 겸 순교자 시복시성추진부장)에 알려주어, 7월 초에 1차 답사하고, 9월 1일에 묘를 발굴하면서, 무덤 속에서 십자가형으로 놓은 돌들과 황사영 진사의 손목에 감고 다니던 비단대(帶)가 들어 있는 작은 이조백자 항아리가 발견되었다.황진사는 16세에 진사에 합격하여, 정조 임금이 감탄하며, 황진사의 손목을 잡고 격찬하였는데,상감이 잡았던 손목에 항상 비단 한 폭을 감고 다녔다고 전하고 있다. 
 
거의 매년, 1980년부터 필자가 찾을 적마다, 수북한 잡풀 속에서, 종종 호박 넝쿨에 덮여 있기도 하던 순교자 황진사 묘가 깔끔히 금초한 오늘의 모습은 200 여년만에 지금의 모습이 처음이다. 그러나 주변에 러부호텔들에 둘러쌓여 출입이 매우 불편하다. 초가집 마을이었던 1980년도 여름, 마을 이장과 함께 묘지 발굴 확인 후, 평당 3만원씩 3천여평을 바로 마련할 수 있다며, 몇차례나 매입 계약 직전에 이를 강력히 반대하던 당시 관활교구 저명 사제들이 오늘 평당 6,7백만원으로 올라간 주변 땅값과 각종 빌딩 숲을 보면서 지금은 무슨 어떤 생각들을 하실지 !?-이는 마재 성지 역시 마찬가지다. 직무유기와 성지개발 반대의 잘못된 한국 교회 역사는 구체적인 기록으로  길이 남길 것이다. -Msgr. Byon-  
 

가마골 홍복산 아래 있는 순교자 황사영 진사의 묘를 발굴하기 전,대구 가톨릭신문사 고국상 기자의 안내로 성직자로서는 최초로 답사 확인한 변기영 신부, (당시 한국주교회의 200주년주교특별위원회 사무국장 겸, 한국순교자시복시성추진부장,1980년 7월 1일)

순교자 황사영 묘 발굴시 발견된 항아리를 변기영(신장 본당)신부가 들어내고 있다. 곁에 있는 황두희씨는 판윤공파(判尹公派) 종친회 회장으로 황사영 계의 후손이다. 신유박해 당시 황사영의 외아들 경헌이 추자도로 유배되자, 황씨 문중에서는 족보상으로 황사영의 사촌인 병직(秉直)을 양자로 들여 손(孫)을 잇게 했었다.(1980년 9월 1일)



가마골 홍복산 아래 있는 황사영 진사 묘를 발굴후 재 손질한 모습(변기영 신부, 1980.09.20일 경)
     

가마골 홍복산 아래 있는 황사영 진사의 묘를 발굴하기 전 답사 확인(변기영신부1980년 7월 1일) 
 


 
변기영 몬시뇰, 박국장, 고실장, 허실장, 송추 홍복산 독막골(가막골) 황사영 순교자 묘 참배(2019.09.23, 성지순례 온 인천 계양본당 신자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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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성탄절에도 들려오는 비명의 한맺힌 서글픈 음악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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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사하라 사막의 모래 바람 무릅쓰며
 
에집트로 피난길 걸어가던 10대 후반의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의
 
모래 발자욱 소리가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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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들을 총칼의 무력으로 그들이  살던 마을,
 
그들의 땅과 그들의 집에서 내쫓아,
 
강제로 떠나게 하는 것은 이 시대 우리 모두의 불의이며,
 
또한 이주민 저들이 이주도중에 바다에서 항해 중 익사하는 것을
 
방관하고, 더우기 방치하는 것은 더욱 큰 불의가 아닌가?!.
 
 
-교황님 말씀,2019/12/19, 로마, 바티칸의 목소리-  Msgr. Byon 역술 소개-
입력 : 2019.10.03 오전 7:34:43
입력 : 2019.09.25 오전 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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