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본당 출신 스승예수제자수녀회 장마리아 인노첸시 수녀님이 휴가 중에,
오빠 장명희 회장님과 함께 곡수리 시골 공소로 변기영 몬시뇰 인사차 예방
<2025.10.31>
신장본당 출신 [스승예수제자수녀회] 장마리아 인노첸시 수녀님이 휴가 중에,
오빠 장명희 회장님과 함께 곡수리 시골 공소로 변기영 몬시뇰 인사차 예방 !
<2025.10.31>
장수녀님은 금년으로 스승예수제자수녀회에 입회한지 만 49주년(?)이 되어가는 당년 70 여세의 할머니 수녀가 아니라, 누가 봐도 젊은 40대의 한참내기로 펄펄 날리는 새파란 젊은 수녀님입니다. 당시 필자가 4~5 백명 신도수의 작은 농촌 신장본당에서 1976년도 (?) 장 수녀님이 스승예수제자수녀회에 입회하던 시기에는 신장본당에서,약 7~8 명의 수녀회 지원자들이 각자 자율적인 선택대로 성가 소비녀회, 스승예수제자수녀회, 순교복자수녀회, 부산 마리아 수녀회, 수원 성 빈센트수녀회, 등 여러 수녀회로, 작은 한 시골 본당에서 여러 큰 수녀회로 1, 2 명씩 입회하는, 1, 2년 간에 일어난 실로 대단한 역사적 은총의 시기였읍니다. 그런데 그 중 한분만이 오랜 지병으로 종신 허원 후, 40 여세에 제일 먼저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가시고, 다른 분들은 모두, 영육 건강히 지금까지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천주교회 발전을 위하여 정말 크게 이받이하신 한 알의 썩는 밀알들이 되신 분들입니다.
당시 필자는 신장본당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구산 공소 교우들과 함께 구산 순교복자 김 안당 묘 앞에 순교기념비를 세웠고, 남한산성 순교지에 중부면 전임 면장 주선으로 여러해 묵은 논 뺌이 서너 필지 모두 1,000 여평을 제일 먼저 우선 확보하였으며, 또 퇴촌면 우산리 심산궁곡에는 한국천주교회 창립선조들께서 자발적으로 천주교 교리 연구를 위한 강학과 실천을 시작한, 한국 천주교회 탄생지(*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 공식 표현) 천진암 성지 확보를 계획하면서, 관계 분야 역사 학자 선배님들과 필설의 격론을 극복하면서, 주재용 신부님과 정원진 신부님,오기선 신부님과 남상철 회장님과 유홍렬 교수님, 등의 시론을 정리하면서, 열성을 다하여 한국천주교회 창립사에 관한 자료수집에 힘쓰며 답사를 계속하던 때였읍니다.
이 때부터 신장성당의 젊은 이들을 데리고 구산 복자 김 안당 묘와 남한산성 성지에 자주 가서, 우리 순교선조들의 땀과 눈물에 젖고 순교의 피로 물든 계곡을 걸으며, 순교정신으로 수도 성소를 일깨우고 다지며 키우고자 하였으니, 신장본당의 초대 수도자 성소는 이렇게 한국 순교자들의 피로써 움이 트고 싹이나서 자라난 용감하고 굳센 성소였고, 주교님들이 결정한 바를 외국 유학도 하지 않은 수원교구 젊은 촌 신부가, 믿는 데라고는 우리 본당의 천사같은 복사대 어린이들 기도와, 주일학교 어린이들을 주일이 아닌 월, 화, 수, 목, 같은 평일에도 마을마다 아침 저녁으로 시간을 정하여 모아 놓고 가르치다가, 중학생이 된 어린이들은 토요일이나 주일에 데리고, 본당신부님인 나와 함께 구산과 남한산성 성지, 순교선조들의 피로 물든 땅을 밟고 오르내리던, 수녀원 가려는 성지순례하는 젊은 예비 수녀지원자들의 기도 뿐이었읍니다.
그 때 복사단 속에는 훗날 서부 전선 1사단장 육군 소장 하창호 장군이 자라고 있었고, 하남시 민선 시장 김상오 시장 등, 훌륭한 인재들이 있었으며, 7~8 명의 주일하교 어린이 선생님들은 지금 70 대의 나이 먹은, 그러나 나처럼 늙지 않고 여전한 젊은 수녀들이었고, 특히 4 ~ 5 명의 학생들은 사제가 되어 사목하다가 은퇴한 원로 사제들도 있읍니다. 모두, 시골본당의 늙지 않는 신장본당의 천사처럼 순수하고 소박한 복사대와 열성이 넘치던 작은 본당의 우리 예비 수녀님들 기도 덕택입니다. .
그러던 중 서울대교구 김수환 추기경님의 보좌주교로 임명된 경갑룡 주교님이 필자를 지명하며 요청한 사제 인사 관례를 따라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님의 동의로, 필자가 한국주교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최초로, 한국천주교회200주년기념준비위원회 초대 사무국장으로 임명되면서, 서울 퇴계로 4 층에 집무실을 차렸는데, 당시 한국천주교회 전국 신도 수는 1979년 겨우 114 만 여명에 불과하였으며, 당시는 매년 전국 교우 수가 약 3 만 여명씩 증가하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아무도 해보지 않은 거국적인 200주년기념제 준비와, 103위 순교복자 시성추진, 등의 준비 실무자로서, 필자는 실제로 소박하고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우리 본당의 어린 복사대와 작은 가난한 시골 본당에서 큰 수녀회로 입회하는 우리 수녀지원자들의 기도와 희생에만 전적으로 크게 의지하면서 중차대한 직무수행에 과묵히 최선을 다하게 되었읍니다.<계속>
신장본당 출신 스승예수제자수녀회 장마리아 인노첸시 수녀님 휴가 중 오빠 장명희 회장님과 함께 곡수리 시골 공소로 변기영 몬시뇰 인사차 예방(2025.10.31).
신장본당 출신 스승예수제자수녀회 장마리아 인노첸시 수녀님 휴가 중 오빠 장명희 회장님과 함께 곡수리 시골 공소로 변기영 몬시뇰 인사차 예방(2025.10.31)..
신장본당 출신 스승예수제자수녀회 장마리아 인노첸시 수녀님 휴가 중 오빠 장명희 회장님과 함께 곡수리 시골 공소로 변기영 몬시뇰 인사차 예방(2025.10.31).
신장본당 출신 스승예수제자수녀회 장마리아 인노첸시 수녀님 휴가 중 오빠 장명희 회장님과 함께 곡수리 시골 공소로 변기영 몬시뇰 인사차 예방(202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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