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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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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를 쓴 사마천((司馬遷)을 본받아야 할텐데 !

글 :  천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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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司馬遷, BC.145?~BC.86?))은 예수님보다 100여 년 전에 먼저 태어나서 60 평생을 살다간, 기원전 1세기경, 중국 한무제 때의 중국 역사가다. 사마천은 그 유명한 史記를 쓰기 위하여, 책이란 책은 구할 수 있는데까지 구해다가 萬餘卷의 책을 읽고, 萬餘里를 멀게 여기지 않고 오고가고 하며, 항상 읽고, 답사하며, 재확인한 후 역사를 집필하였다고 하니, 정말 기가 막힌다. 사실 1145년에 내놓은 金富軾의 三國史記와 1285년 경에 낸 一然의 三國遺事보다 10여세기나 앞서서 집필한 역사서로서, 기원 전 우리 배달겨레가 千年 세월을 두고 걸어온 來歷에 관한 역사 자료역시, 사마천의 史記에 근거하는 것이 적지 않다.

이렇게 먼저 많은 책을 찾아서 읽고, 周遊天下하면서, 관련된 많은 史蹟地 現場을 일일이 답사하며 평생을 두고 기록하였다니, 그의 역사서, [史記]의 무게와 넓이와 깊이를 짐작케 한다. 그래서, 사마천의 史記는 인류역사상 가장 잘 쓰여진 세계 최고의 유명한 古代 歷史書가 되었다. 더군다나, 역사서 집필을 마치기 위하여, 한무제 때 敗將 李陵을 위한 변호로, , 황제에게 진언을 하다가 촉발된 史禍로 인하여 死刑을 당하게 되자, 역사서 집필을 마치고자 궁형(宮刑-內侍로 만드는 極刑)을 자처하여, 불구자로 살면서, 역사서 집필을 마쳤다고 하니. 실로 놀랍고도 무서운 史家이며 史人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적지 않은 史學人들 중에는, 千字文도 제대로 한번 다 읽어보지도 못하고, 또 놀러 다니기는 해도, 史蹟地 답사를 위하여서는 문밖에 단 한 발자국도 내딛기를 싫어하며, 꺼려하고 기피하는 이들이 새겨들어야만 할 史實이다.

특별히 韓國天主敎會史 분야에 있어서, 이 시대 우리 史學人들과 史學徒들 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을 위하여 敎會史에 관한 필을 잡는 이들은, 先人들의 漢文 文章 몇줄 번역이나, 서양 선교사들이 쓴 주로, 佛語 書籍 몇줄 번역에만 매달리고, 의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욱이 번역도 그나마 제대로나 하면 다행이련마는, 당시대 문화와 관련 당사자들의 자질과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先人들의 言語 관습이나 文脈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함부로 가르치고, 글을 써 내는 경우가 非一非再하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오늘날, 誤解와 訛傳으로, 歷史歪曲이 차고 넘치고 끝이 없어 보인다. 더구나 功名心이나 名譽慾까지 겹치면, 그 결과의 피해가 극심할 수밖에 없다. 聖賢 道師도 愚夫愚婦처럼, 殉敎者도 背敎者처럼, 주장하거나, 그런 주장에 따라가는 일에 서슴지도 않고, 겁도 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어디 역사서 집필에만 그러랴? 우리의 일반적인 매일생활이나 각자의 직분수행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니, 史記 집필에 임하던 司馬遷을 거울로 삼아야 하겠다.! Msgr. Byon
입력 : 2011.04.03 오후 1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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