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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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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선생 母校,천진암은 어린이날 어린이들이!

글 :  천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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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정약용 선생의 母校를 방문하는 어린이들!

우리나라 세종대왕 때부터 움트기 시작한 르네상스(renaissance, 文藝復興)가
분수령을 이루는 것은 正祖大王 시대로 보는 데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공감하며
반대하는 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정조대왕에게 학문적으로나 사상적으로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쳐 준 최
측근 신하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었음을 거의 모든 학자들이 동감하며, 반대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면, 정약용 선생을 가르친 그의 선생님은 누구였으며, 정약용 선생님의 모교는 어디였는지에 대하여는 잘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우리가 꽃나무의 꽃잎만을 보고는 감탄할 것이 아니라, 그 꽃나무의 둥치와 뿌리도 알아야만 그 꽃이 더욱 만발하게 피도록 할 수 있으며, 그 열매도 제대로 맺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약용 선생과 정약종, 정약전, 그 형제분들은 10세 미만 아주 어려서부터, 즉 1770년부터 1784년 늦봄까지 약 15년간 천진암을 종종 찾아와 놀면서, 당시 천진암의 독서처 천학도장에서 독서에 열중하던 이벽성조로부터,당시로서는 전국 어떤 글방이나 서당이나 서원에서도 들어보거나 배울 수 없는 학과목이었던 천문학과 지리학, 수학과 기하원본, 양력과 요일 따지는 曆學, 및 천주교 교리를 공부하고, 기도하며, 십계명과 음력주일도 제정하여 지키면서, 천주교 신앙을 실천하였다고, 훗날 정약용 선생 자신이 기록하였습니다.

<豪士昔講讀/天眞菴/石徑細如線/昔我童時遊/從李檗/嘗從李檗/賢友賢士/道友衆徒如叢林/聞曆數之學/究幾何原本/聞新敎之說/禪房無處舊人求/前躅凄迷不可求/聖敎要旨下筆/…丁若鏞 全集, 蔓川遺稿,/丁學術 니벽전,/Daveluy 주교 朝鮮殉敎者 備忘記, / Pullo-Pinang 역사교과서/ Pierre Maubant 신부, 등의 보고서 참조>

<참고 文句 발췌와 大義 譯述>

<호걸과 선비들이 강학하던 천진암 오르는 길은, 돌바닥 딛고 가는 바윗돌 사이로 실같이 가는 길이지만, 어린 시절 우리가 오르내리며 놀던 길이다! 나와 우리 형제들은 일찍 어려서부터 이벽 선생을 따르고 섬기며 늘 추종하였다. 그 후로 천진암에는 어진 벗들과 선비들, 道닦는 벗들이 무리지어 모여서 단체를 이루었으며, 曠菴公 이벽선생 한테서 우리는 천문학, 지리학, 수학, 曆學, 기하원본, 천주교 교리, 의학, 등을 배웠다. 아! 그 시절 함께 공부하며 기도하던 옛 선비들(이벽, 이승훈, 등), 이제는 모두 세상을 떠났으니, 어디 가서 다시 찾아 구해올 수 있으랴? 이제 그 때처럼 모여서 다시 그대로 강학과, 독서를 다시는 해볼 수 없으니, 한이로세!

韓民族 開化와 韓國社會 改革과 祖國 近代化의 촛불을 밝히면서, 한국천주교회 창립의 움을 티우고, 싹이 돋아나게 한, 天眞菴 聖地 李檗 讀書處 天學道場으로 어린이들을 초대합니다.

어린이날, 실업자와 무직자, 맞벌이 부부들의 가난한 월셋집에 사는 어린이들을 더욱 부끄럽고 서글프게 만드는, 경쟁적인 오락과 과소비 일변도의 놀이터나 유원지보다는, 거룩한 역사가 서려있는 천진암 성지, 정약용 선생 모교에 와서, 정약용 선생의 스승 이벽성조와 5위 성현들의 묘도 참배하고, 이벽, 이승훈, 정약용, 정약전, 정약종, 등 우리 위대한 성현들이 어린시절에 자주 밟고 다니며 오르내리던 바윗돌 사이길 현장을, 오늘의 어린들과 함께 밟아보도록 합시다. - Msgr. Byon
입력 : 2011.04.18 오후 11:4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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