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풍경소리

WIND BELL

별똥별처럼 무서운 속도로 墮落해 가고 있는 교회.

글 :  천진암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 스크랩
별똥별처럼 무서운 속도로 墮落해 가고 있는 교회 신앙인들의 終點은 어디인가?

聖 아우구스띠노가 당시 교회 신앙인들에 대하여, “뛰기는 잘 뛰며, 부지런히 달려가고는 있지만, 길 밖으로 뛰어가고 있구나(Bene currit, sed extra viam!) !”하며, 한탄하신 적이 있다. 우리 信徒들이 주님의 길이 아니고, 우리 신앙선조들이 가신 길도 아닌, 길 밖으로 달려가다 보면, 中世 일부 敎會보다 더 참담한 타락을 피하기 어렵다.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들에 대하여, 聖人께서는 천상에서 같은 탄식을 하시지 않을까? 우리가 지치도록 달려가고 있는 이 길 위에서, 아무리 허덕이며 계속 뛰어가 보아도, 앞서가시는 주님의 뒷모습이나 발자국이 보이지 아니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주님이 가시는 길이 아니라면, 아니, 아예, [길]이 아니라면, 더욱이, 우리 주님의 길에서 주님을 따라가던, 우리 신앙선조들이 가시던 길이 아니라면, 늦었지만, 차라리 뒤로 되돌아가야만 하지 않을까? 우리 신앙선조들의 발자국을 되밟아보면서,,,.

길 밖으로까지 떨어져서 달리게 되는 시초는, 방법과 목적을 혼동하고, 主人과 도구나 수단(手段)을 식별치 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敎會(Ecclesia)와 聖事(sacramentum)의 관계도 식별하지 못할 정도로, 오늘날 우리들의 안목은 흐려져 있다. 예를 들어, 7 성사는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라는 단체가 자체의 生存과 成長 발전을 위하여, 자체를 위한 [聖事]로 설정하고, 집행하며, 주관하고, 관리하는 수단이며 방법이다. 그런데도, 聖事가 敎會보다 先行하고 先在하는 단체나 기관처럼 착각할 정도로, 先後를 모르는 이들이 많다. 도구(instrumentum,道具)와 그 도구를 사용하는 그 도구의 主人을 분별하지 못하여, 도구를 주인 머리 위에 모시고, 도구의 주인이 되는 자신은 도구에서 태어났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정도다.

좀더 풀어보면, 우리나라 교회의 출발을 세례성사 거행으로 삼고, 주장하는 이들이, 敎義神學的으로 부끄럽게도, 아직도 없지 않지만, 전 세계 어느 나라 교회도, 우리나라 교회의 일부 識者들처럼, 세례성사를 교회출발로 삼는 나라는 하나도 없으며, 복음선포와 신앙활동으로 출발을 삼는다(Cor.I/1장11절), 이는 사도시대부터 2천년간 우리 천주교회의 변함없는 敎義(Dogma, 교의헌장 14항, 선교헌장14항. 교회법 206조, 현행 교리서 1249항)로서, 聖事는 교회를 成長시키는 하느님의 善物(Donum Dei, 교리서 1246항)이오, 方道(methodus)이며, 業務(opera)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천주교회도 자신의 生存과 成長을 위한 方道와 業務 자체에 너무 치중하며, 끌려가다보면, 교회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교회의 길 밖으로까지 나가서 분주하게 뛰어가게 되며, 나아가, 교회를 극심하게 타락하게까지 만들게 마련이다.

교회가 타락하면, 특별히, 교회 구성원 신도들이 타락하면, 성직자들까지도 타락의 길로 끌어들이기 쉬운데, 타락한 신앙인들은 차라리 냉담자들만도 못하여, 未信者들보다도 훨씬 더 교회에 끼치는 피해와, 입히는 상처가 혹심하게 마련이다. 이유는 교회 안에서 교회 이름으로, 교회의 힘으로, 無信仰의 정신과 자세로, 정성이나 敬虔性이 고갈된 空念佛로, [교회]를 이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알라(Mt.7/16)고 하시며, 주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겠거든, 주님이 하신 일이라도 보고 믿으라(Joh.14/11)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Msgr. Byon.
입력 : 2011.05.28 오전 8:57:17
Copyright ⓒ 변기영 몬시뇰 사랑방 Servant Hall of Msgr. Byo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