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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WIND BELL

8월15일에는 온국민이 성모님께 감사해야 할텐데,,,.

글 :  천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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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는 온 국민이 성모님께 감사해야 할 텐데!!!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은 예수부활, 성령강림, 예수성탄 대축일과 함께, 천주교회 안에 사도 시대부터 내려온 20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가장 오래된 축일이다. 主後 100년경을 전후하여, 초대교회 시대에는 지금처럼 천주교신도들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에페소와 코린토, 테살로니카, 예루살렘, 등의 중앙아시아 지역의 교회에서만, 그리고, 주로 유태인 교포(diasphora) 신자들로 이루어진 소규모 천주교 신자 단체를 중심으로 聖母昇天日을 기념하며, 중요한 기념 축일로 경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로마 교회를 창립한 사도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Maria Santissima in mezzo ai Santi Apostoli Pietro e Paolo, I fondatori della Chiesa di Roma(M. Garrucci)가 한 가운데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있는 초대교회의 조각상이나 금장식물에서 보듯이, 로마에서는 매우 일찍부터 성모신심이 뿌리를 내렸다.

그리하여 사도들과 그 제자들의 전교활동으로부터 직접적인 가르침과 영향을 받은, 지중해 연안 아프리카 지역과 이태리, 프랑스, 스페인의 남부 지역의 신자들도 중앙 아시아 지역의 여러 교회에서처럼, 대부분 매년 8월 15일에 성모승천 기념 경축예절을 거행하였다. 지나간 2천년 천주교회 역사를 보면, 전쟁의 종식이나 휴전이나 대규모 포로들의 석방이 [성모님 축일]에 이루어지는 특으니기도 하였다.近代史에서도 성모님께서는 우리겨례를 보살펴주신다는 사실을 읽어볼 수 있다.

그러나 지역교회의 사정에 따라, 또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마치 예수성탄 축일처럼, 用語와 날짜와 예절 형식이 조금씩 相異하였다. 그 후, 동로마 제국의 Mauritius 황제가 등극하면서, 主後 580년경에는, 동로마 제국의 모든 국경일 성격을 띤 大祝日들을 통일시키면서, 정리하여 확정할 때, 동방교회 지역 천주교회에 慣習化한 전통을 그대로 지키도록, [8월 15일 성모승천축일]을 그대로 계속 거행하도록 확정선포하므로써 세계화하였다.

또한 主後 650년경을 전후하여서는 이탈리아 북부와 프랑스, 영국, 스페인 북서부, 등, 유롭 북서부 서방교회에까지, 성모께 대한 信心과 함께,[8월 15일 성모승천축일] 전례와 경축예절은 빠르게 전파되었다.

결국, 8월 15일의 성모승천 대축일의 역사는 사도시대부터 시작되어, 2000년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오늘의 천주교회를 성장시킨 뿌리요, 줄기다. 따라서, 主後 350년대 후반부터는, 특히 동방교회에서 이미 성모 마리아께 대한 여러가지 아래와 같은 기념일의 제정과 경축이 지역교회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를 두고 시작되어 거룩하게 만발하였다.

[9월 8일의 聖母 聖誕 祝日],
[11월 21일의 聖母 自獻 祝日],
[2월 2일의 聖母 取潔禮 祝日],
[8월 15일의 聖母 昇天 祝日],
[12월 8일의 聖母 無染始胎 祝日],
[10월 1일의 콘스탄티노플의 主保 聖母大祝日],
[1월 15일의 農事 主保 聖母 祝日],
[5월 15일의 밀 農事 主保 聖母 祝日],
[8월 15일의 포도 農事 主保 聖母 祝日],
[6월 15일의 최초 聖母 聖堂 祝聖 祝日],
[每月 21일의 聖母 恭敬日], 등이 지방에따라 크고 작은 행사로 거행되어 왔다.

에페소 공의회, 니케아 공의회, 콘스탄틴 공의회, 등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기까지, 천주교회는 성모 마리아의 평생동정과 천주의 모친, 무염시태와 성모승천, 등에 대한 신앙을 천주교회의 敎義(dogma)로 선언하였다. 특히, 역대 교황님들은, 8월 15일 성모승천을, 예수부활, 성령강림, 예수성탄과 함께 천주교회의 4대축일로 확정하였는데, 사실 이것은, 후대 교회가 새로이 제정하였다기보다도, 先代 교회의 오랜 신심과 전통과 역사를 공인하고 계승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고 할 것이다.

일부 異端者들의 신학적인 異論도 없지는 않았으나, 교회는 주님의 福音宣布에 대한 信仰과 信心生活로 成長하는 것이다. 복음선포와 신앙생활은 신학이나 법규보다 훨씬 앞서는 것인데, 신앙을 보다 잘 설명하고, 지키며, 가꾸기 위하여, 훗날 출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천주교회의 정통신학은 성모신심을 수호하고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승천하신 성모님께서는, 천상에 계신 그리스도의 어머니시며, 지상에 있는 교회의 어머니시고, 그리스도신자들의 어머니시므로, 2천년 교회 역사에 종종 지상 교회에 발현하시어, 우리를 가르치시고, 위로하시고, 이끌어주셨으니, 그동안 천주교회가 교황의 이름으로 公認한, [聖母 마리아의 최근 發現]을 몇 가지만 추려서 소개한다.

1830년~1836년, 프랑스 Paris에서 Canterine Laboure 에게 발현하셨다.(奇蹟의 聖母)
1846년, 이태리 La Salellete에서 발현하셨다. (痛苦의 母親)
1858년, 프랑스 Lourdes에서 Bernarde Subirous에게 발현하셨다.(無染始胎의 聖母)
1879년, 아일랜드 Knock의 Madonna로 발현하셨다.(虛弱者의 聖母)
1917년, 폴투갈 Fatima에서 3명의 10세전후 어린이들에게 발현하셨다.(反共勝利의 聖母, 즉, 소련의 무신론 공산주의에서 회두)
1932년, 벨지움 Beauraing에서 5명 어린이들에게 발현하셨다. (祈禱하는 聖母)
1932년, 벨지움 Banneux에서 Maria Beco에게 발현하셨다.(貧者들의 어머니)

<참고 문헌 소개: “성모 마리아 學(MARIOLOGIA)”에 관한 저서와 기록들은 대단히 많은데, 그 중 최근에 편찬하여 발행된 아래 백과사전 내용이 가장 풍부한 역사문헌들을 열거하면서 잘 되었다고 보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ENCICLOPEDIA DEI SANTI - BBLIOTHECA SANCTORUM - CITTA NUOVA EDITRICE, 1996, ROMA. Vol. VIII. p. 814 ~ P.962>.

제1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이르러, 1917년 폴투갈 Fatima에 發現하신 성모 마리아께서는, 10세 전후의 루시아, 히야친타, 프란치스코, 3명의 어린이들에게, 지금 이 큰 전쟁(제1차세계대전)이 빨리 끝나도록 함께 기도하자고 권하시며, 열심히 기도하면, 얼마 안가서 이 전쟁은 끝나겠지만, 사람들이 悔改하고, 천주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신자들도 열심히 기도하지 않으면, 지금 이 전쟁보다 더 무서운 큰 전쟁(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시면서, 天主 聖父의 震怒하심을 면하도록, 함께 열심히 보속하며 기도하자고 권고하셨다. 지나간 2천년 천주교회 역사에, 참혹한 전쟁의 종식이나 휴전이나 대규모 포로들의 석방이 [성모님 축일]에 이루어졌음을 볼 때, 성모님께서 우리겨례를 위해주신다는 사실을 近代史에서 읽어볼 수 있다.

성모님의 轉求하심으로 제1차 세계대전은 1917년 후반기부터 바로 수그러들기 시작하여, 마침내 1918년에 끝났으나, 제2차 세계대전은 원자폭탄이 사용될 정도로, 인류역사상 前代未聞의 참혹한 전쟁이었다. 히틀러와 뭇소리니가 죽고, 독일이 재터미가 된 직후에도, 일본은 항복을 거부하면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의를 발표하였으나, 마침내 1945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 일본이 항복하므로써, 수천만명이 죽어간 세계 제2차대전이 끝났고, 우리나라는 光復이 되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美.蘇 양 강대국 점령하에서 3년을 보냈다. U.N.의 결정에 따라, 남한에서는 U.N.감시하에 1948년 5월 10일 자유 총 선거가 실시되었다. 반만년 韓民族史에 최초로 순수 民意에 의한 선거로 制憲國會議員 198명이 선출되어,이승만 박사를 초대 제헌국회 의장으로 선출하고, 해방후 즉시 헌법학자 유진오 박사, 등이 착수한 헌법을 가결, 같은 해 7월 17일에는 헌법이 제정, 선포되었고, 새 허법에 의한, 정부조직법, 등을 제정하여, 초대 대통령에 이승만박사를 선출, 마침내, 1948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와 3부 요인들은 온 국민과 함께 환호하며, [대한민국 건국]을 전 세계에 선포하였다.

그러나 신생 대한민국은 국제연합(U.N.)의 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장면 박사와 조병옥박사, 김활란 여사(?)를, 그해 가을에 파리에서 열리는 U.N. 총회에 파견하여, 그해 12월8일,[성모무염시태 축일]에 국제연합(U.N.총회)에서 48대6으로 확정되었으나,실제 발표는 다음날(12월 9일)에 절대적인 지지와 승인이 발표되었다.

당시 우리나라 대표들은 외교의 황무지 상태에 있었고, 미국역시 세계대전 후, 오늘날처럼 아직 외교 조직이 자리잡히지 않던 시절이어서,우리나라 대표들은 누구한테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 막막하였다.당시 70 여 개국과 대사관계를 가진 로마교황청과 주한교황대사관(아직 정식 대사는 없었고, 다만 교황 사절만이 연락업ㅂ무를 하던 시절)과,또 여러 나라와 국교를 가진 프랑스의,[ 파리외방전교회(Mission Etrange du Paris)] 신부님들의 도움으로, 각국 대표들의 지지를 얻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사실, U.N.의 대한민국 승인에 관한 뒷 이야기는, 다음에 파리의 Lutetia호텔 이야기를 할 때 다시 한번 알리고 싶다(1992년. 5월.3일 자, 조선일보, 문화면의,"파리-2, 파리외방전교회" 참조).성모신심에 열정적인 프랑스 출신의 신부님들과 당시 교황청을 움직여준 분은 바로 우리나라를 사랑하시는 천상의 성모님이셨다. 48대 6의 U.N.승인은,그후 1년 반만에(1950/6/25) 북한 공산군의 남침 때 많은 나라의 지원참전을 가능케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U.N.대한민국 승인 기념일(12월8일)에, 현재도 국내에서 활약하는,[파리 외방전교회]와 주한교황대사관에, 그 흔한,[감사장] 하나 정도는 표시할만하다.

2차 세계대전의 終熄과 韓民族의 解放, 大韓民國의 건국, 모두, 8월15일, [성모승천대축일]에,그리고 U.N.의 승인역시 12월 8일 [성모무염시태 축일]에 확정이 되었으니, 모두가 우리나라와 우리겨례를 사랑하시는 [천상에 계신 성모님]이 베푸시는 은덕임을 깨닫게 한다.

앞으로 남북통일을 위한 획기적인 전환점도, 8월15일 [성모승천대축일]이나, 혹은 다른 [성모축일]에 이루어질 것만 같은 심정이다
Msgr. Byon
입력 : 2011.07.26 오후 2:5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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