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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박홍 신부님 선종, 변기영 몬시뇰 문상(2019.11.08.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글쓴이 Msgr. Byon   / 등록일 : 2019-11-10    (조회 : 84)

박홍 신부님 선종, 변기영 몬시뇰 문상(2019.11.08. 아산병원 장례식장)
박홍 신부님 선종,문상

변기영 몬시뇰 문상(2019.11.08. 아산병원 장례식장). 분향하고나서 무뤂이 아파 잘 일어나기가 불편하여 힘들어하는 변 몬시뇰. 사실은 박홍신부님(1941년 생)이 변 몬시뇰(1940년 생)보다 한 살 아래라, 앞서가는 편이다. 건강검진으로 서울에 올라오면 종종 투석하며 입원 중인 박신부님을 문병하였고, 지난 8월 말(8월 26일) 마지막으로 문병하였다

박홍 신부님 문상 갔다가 오래간만에 아주 귀한 신부님을 만났다. 서강대학교 재단이사장을 맡고 있는 미국인 출신 박문수 신부님이 상제들 중 주빈의 한 사람으로 변 몬시뇰을 맞았다. 미국인 예수회원 박문수 신부님(1941년 생)은 1972년 부제품을 받고, 예수회 한국 관구장님의 부탁으로 한국 선교 준비를 위하여 사목실습 차 수원교구 용인 본당에 파견되어 2 달 정도, 당시 토막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던 용인본당 주임 변기영 신부를 도와주면서 사목실습을 하였다.

박문수 부제님은 60여명이 넘던 용인 본당 시골 회장님들에게 미국인 부제님으로서 좋은 모범을 보였다. 당시 용인본당은 3천여명의 신도들이 9개 면 내에 있는 32개 공소에서 매우 가난하게 살고 있는 농민들이었고, TV가 없던 그 시절, 거의 매일 라디오에서는,",,,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 물동이 호미자루 나도 몰래 내던지고, 말만 들은 서울로, 누굴 찾아서, 이뿐이도 금순이도, 단보짐을 쌌다네, 단보짐을 쌌다네," 하는 노래 소리가 연일 계속되던 때이다...,

32세의 젊은 신부로서 나는 미국출신 예수회 부제님에게, 앞으로 한국에서 선교하기 위하여,우선 개고기를 먹을 줄 알아야 한다면서, 32개 공소의 회장과 부회장 모두 60여명의 용인본당의 공소회장들 여름 야외 이루나무 숲 그늘이 좋은 방축골 냇갈 가 연수 때, 박문수 부제님에게 개고기를 큰 접시에 수북히 담아서 주어 먹게 하였다.미국에서 맛보지 못한 개고기를 처음 먹는다면서 아주 맛있어하며 한접시 모두 다 많이 잘 먹어치우자, 우리 회장들 모두의 박수를 받았다.

나이가 나보도 한살 아래인데, 수도회에서 너무 일을 많이 하였는지, 그 옛날 하얀 얼굴에 곱고 이쁘장하던 박문수 성인 부제님도, 오는 세월 막을 수 없고, 가는 청춘 잡을 수 없다드니, 이제는 백발이 머리는 물론 수염까지 온통 하얕게 된 노인 신부님이 되었다. 나를 보고, '아직도 변신부님은 얼굴이 젊어요' 하며 좀 놀라는 기색이다. 사실 모두들 나를 보고 아직도 자연산 검은 머리가 많은데다가 소년같은 동안으로 붉으레한 홍안이 아직 남아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특히, 중병을 치르고 난 요즈음 얼굴이 옛날보다 더 젊어지고 좋아졌다고 과찬들을 한다.

예수회 대신학생들. 지금 한국 예수회에는 150여명의 신부님들이 한국교회을 위하여 우리네 일반 교구 신부님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서강대학교 총장으로 8년간 일하시다가 이번에 선종한 한 살 아래 박홍 신부님을 잊지 말고 뒤따라가며 우리 모두 진솔한 마음으로 박신부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하여 기도하자. 우리 모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박신부님과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 한국 예수회를 위해서뿐 아니라 민주화 격동기의 한국사회와 교회의 근대화를 위해서 후학들에게 전설적인 업적을 남기신 선배님이 되실 것이다.

+ 故 박홍 루카, SJ 신부 약사

1941.02.27 부산 출생
1960 - 1965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철학 학사
1965.09.01 예수회 입회
1967 - 1969 대건 신학 대학교 신학 학사
1970.11.06 사제 서품
1970 - 1971 전국 천주교대학생 및 지성인 지도 신부
1970 - 2003 서강대학교 영성신학 교수
1970.12 - 1971.12 크리스천 사회행동협의체 초대 이사장
1971 - 1974 미국 세인트 루이스 대학교 영성신학 석사
1974 - 1975 이탈리아 그레고리안 대학교 영성신학 박사
1979.09.08 최종서원
1989 - 1997 서강대학교 제 7,8대 총장
1991- 1997 전국 대학교육협의회 부회장
1992.12 - 2018.03 전국가톨릭교수회의 지도신부
1995 - 1998 대통령 통일고문회의 의원
1997 - 2003 이냐시오 영성연구소 소장
2003 - 2008 서강대학교 이사장
2000 - 2019 서강공동체 거주
2019.11.09 서울 현대아산병원에서 선종



박홍 신부님 선종, 변기영 몬시뇰 문상(2019.11.08. 아산병원 장례식장)



박홍 신부님 선종, 변기영 몬시뇰 문상(2019.11.08. 아산병원 장례식장)



박홍 신부님 선종, 변기영 몬시뇰 문상(2019.11.08. 아산병원 장례식장)



박홍 신부님 선종, 변기영 몬시뇰 문상(2019.11.08. 아산병원 장례식장)



박홍 신부님 선종, 변기영 몬시뇰 문상(2019.11.08. 아산병원 장례식장)



박홍 신부님 선종, 변기영 몬시뇰 문상(2019.11.08. 아산병원 장례식장)



박홍 신부님 선종, 변기영 몬시뇰 문상(2019.11.08. 아산병원 장례식장)



박홍 신부님 선종, 변기영 몬시뇰 문상(2019.11.08. 아산병원 장례식장)



박홍 신부님 선종, 변기영 몬시뇰 문상(2019.11.08. 아산병원 장례식장)



박홍 신부님 선종, 변기영 몬시뇰 문상(2019.11.08. 아산병원 장례식장)



박홍 신부님 선종, 변기영 몬시뇰 문상(2019.11.08. 아산병원 장례식장)



박홍 신부님 선종, 변기영 몬시뇰 문상(2019.11.08. 아산병원 장례식장)


박홍 신부님 선종,문상
 
변기영 몬시뇰 문상(2019.11.08. 아산병원 장례식장). 분향하고나서 무뤂이 아파 잘 일어나기가 불편하여 힘들어하는 변 몬시뇰. 사실은 박홍신부님(1941년 생)이 변 몬시뇰(1940년 생)보다 한 살 아래라, 앞서가는 편이다. 건강검진으로 서울에 올라오면 종종 투석하며 입원 중인 박신부님을 문병하였고, 지난 8월 말(8월 26일) 마지막으로 문병하였다
 
박홍 신부님 문상 갔다가 오래간만에 아주 귀한 신부님을 만났다. 서강대학교 재단이사장을 맡고 있는 미국인 출신 박문수 신부님이 상제들 중 주빈의 한 사람으로 변 몬시뇰을 맞았다. 미국인 예수회원 박문수 신부님(1941년 생)은 1972년 부제품을 받고, 예수회 한국 관구장님의 부탁으로 한국 선교 준비를 위하여 사목실습 차 수원교구 용인 본당에 파견되어 2 달 정도, 당시 토막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던 용인본당 주임 변기영 신부를 도와주면서 사목실습을 하였다.
 
박문수 부제님은 60여명이 넘던 용인 본당 시골 회장님들에게 미국인 부제님으로서 좋은 모범을 보였다. 당시 용인본당은 3천여명의 신도들이 9개 면 내에 있는 32개 공소에서 매우 가난하게 살고 있는 농민들이었고, TV가 없던 그 시절, 거의 매일 라디오에서는,",,,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 물동이 호미자루 나도 몰래 내던지고, 말만 들은 서울로, 누굴 찾아서, 이뿐이도 금순이도, 단보짐을 쌌다네, 단보짐을 쌌다네," 하는 노래 소리가 연일 계속되던 때이다...,
 
32세의 젊은 신부로서 나는 미국출신 예수회 부제님에게, 앞으로 한국에서 선교하기 위하여,우선 개고기를 먹을 줄 알아야 한다면서, 32개 공소의 회장과 부회장 모두 60여명의 용인본당의 공소회장들 여름 야외 이루나무 숲 그늘이 좋은 방축골 냇갈 가 연수 때, 박문수 부제님에게 개고기를 큰 접시에 수북히 담아서 주어 먹게 하였다.미국에서 맛보지 못한 개고기를 처음 먹는다면서 아주 맛있어하며 한접시 모두 다 많이 잘 먹어치우자, 우리 회장들 모두의 박수를 받았다.
 
나이가 나보도 한살 아래인데, 수도회에서 너무 일을 많이 하였는지, 그 옛날 하얀 얼굴에 곱고 이쁘장하던 박문수 성인 부제님도, 오는 세월 막을 수 없고, 가는 청춘 잡을 수 없다드니, 이제는 백발이 머리는 물론 수염까지 온통 하얕게 된 노인 신부님이 되었다. 나를 보고, '아직도 변신부님은 얼굴이 젊어요' 하며 좀 놀라는 기색이다. 사실 모두들 나를 보고 아직도 자연산 검은 머리가 많은데다가 소년같은 동안으로 붉으레한 홍안이 아직 남아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특히, 중병을 치르고 난 요즈음 얼굴이 옛날보다 더 젊어지고 좋아졌다고 과찬들을 한다.
 
예수회 대신학생들. 지금 한국 예수회에는 150여명의 신부님들이 한국교회을 위하여 우리네 일반 교구 신부님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서강대학교 총장으로 8년간 일하시다가 이번에 선종한 한 살 아래 박홍 신부님을 잊지 말고 뒤따라가며 우리 모두 진솔한 마음으로 박신부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하여 기도하자. 우리 모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박신부님과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 한국 예수회를 위해서뿐 아니라 민주화 격동기의 한국사회와 교회의 근대화를 위해서 후학들에게 전설적인 업적을 남기신 선배님이 되실 것이다.
 
+ 故 박홍 루카, SJ 신부 약사
 
1941.02.27 부산 출생
1960 - 1965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철학 학사
1965.09.01 예수회 입회
1967 - 1969 대건 신학 대학교 신학 학사
1970.11.06 사제 서품
1970 - 1971 전국 천주교대학생 및 지성인 지도 신부
1970 - 2003 서강대학교 영성신학 교수
1970.12 - 1971.12 크리스천 사회행동협의체 초대 이사장
1971 - 1974 미국 세인트 루이스 대학교 영성신학 석사
1974 - 1975 이탈리아 그레고리안 대학교 영성신학 박사
1979.09.08 최종서원
1989 - 1997 서강대학교 제 7,8대 총장
1991- 1997 전국 대학교육협의회 부회장
1992.12 - 2018.03 전국가톨릭교수회의 지도신부
1995 - 1998 대통령 통일고문회의 의원
1997 - 2003 이냐시오 영성연구소 소장
2003 - 2008 서강대학교 이사장
2000 - 2019 서강공동체 거주
2019.11.09 서울 현대아산병원에서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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