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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951년 2월 초부터 5월 말까지, 지평과 용문산 가평, 등 화천 지역에서 중공군 3개사단 5만여 명과 격전 끝에 대승한 [국군의 화천 파로호 승전 기념비] 순례 ! - (2021.11.12)
글쓴이 Msgr. Byon   / 등록일 : 2021-11-17    (조회 : 1676)

1951년 봄 지평, 용문산, 중공군 격파 승전 기념비 화천 파로호 순례(2021.11.12)

1951년 봄, 지평, 가평, 용문산, 화천 지역에서 의 대격전 파로호 대첩은, 북한 공산당 인민군이 1950년 6월 25일부터 기습 남침하여 3일만에 빼앗았던 수도 서울이 1950년 9월 15일, 국군 특수부대 요원들의 참여와 지원을 받으며 미군의 인천상륙 작전 대승과 함께, 1950년 9월 28일 국군과 UN군이 서울을 완전히 수복하고, 평양을 점령하고, 앞록강까지 진격하자, 100만이 넘는 중공 대군이 북한 공산군을 지원하기 위하여, 특히, 남침 3일만에 기습 점령하여 빼앗았던 서울을, 빼앗긴 후 3개월 만에 다시 국군과 UN군에게 빼앗기자 이를 다시 최종적으로 빼앗기 위하여, 모택동의 오른 팔과 같이 중국 공산화 유혈혁명의 대장정 동료 팽덕회가 지휘하는 중공 집단군 3개사단 약 4만 5천여 명~5만여 명이 지평과 용문에 대규모로 집결하여 1951년 2월 13일 경부터 10여일간의 혈전을 시작으로 5월말까지 가평과 화천 지역에서 국군과 UN군에게 대패하였다.



특히 지평과 용문산 전투 최종 3일간은 피아 쌍방의 실탄이 모두 소진되고, 식량도 떨어져 굶어가며 소총을 꺼꾸로 잡고 몽둥이 삼아, 이른 바, 백병전으로 처절하게 난투극을 벌였으나, 그래도 국군 6사단과 8사단 일부가 지평에서 재집결 편성한 국군이 미군 특전 기갑연대와 프랑스 육군 1개 대대 6백여 명은 제공권을 장악한 미공군이 공중 투하하는 비상 대용식량 통조림으로 허기를 면할 수 있었으나, 중공군은 수송차량이 전혀 없이 도보로 이동하며, 낮에는 숨어서 자고, 밤에는 분대별, 소대별, 중대별로 아군을 기습하며 발악을 하였으나, 아군은 미 공군의 폭격과 미군 기갑부대의 지원을 받으며 중공군 약 2만여 명을 사살하면서 수도 서울 재 점령 작전계획을 사전에 방어하면서, 오늘의 휴전선까지 중공군 대부대를 퇴각시켰다.



낙동강 다부동 전투는 주로 인민군 육군 부대만을 상대하며 싸우던 전투였으나, 이와는 달리, 지평과 용문산에서의 전투는 주로 약 5만여 명에 달하는 중공군과의 격전이었고, 우리국군을 지원하는 미군과 프랑스군이 U.N. 이름으로 함께, 특히 1951년 2월 13일부터 10여일간 지평과 용문산 전투에서는 약 2만여 명의 중공군을 사살하며 대승을 거두어, 가평, 청평, 화천에 이르는 중공군 대부대를 격파하여 오늘의 휴전선까지 퇴각시킨 최대 승전 기념비로 이승만 대통령은 [화천호]를 [파로호破虜湖] 로 명명함과 동시에 승전 기념비를 세웠다.



<破虜湖>11월은 위령성월입니다. 천주교회에서는 먼저 세상을 떠난 조상님들과 친척들과 모든 영혼들을 기억하며 매일 기도하고 미사를 올리며, 많은 이들에게 잊혀진 불쌍한 영혼들을 위하여, 무덤이나 연고지를 찾아 순례하며, 기도하는 달입니다.



70 여년 전 지평, 용문, 가평. 청평. 화천, 등지에서 우리나라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전 세계 인류의 자유를 위하여, 反共의 깃빨을 드높이 휘날리며 용감히 싸우다가 거룩히 전사한 우리 국군 용사들과, 특히 나이 어린 학도병 무명 순교 용사들과, 더욱이 고국을 떠나와서, 이 심산궁곡에서 공산주의와 싸우다가 깨끗한 끓는 피를 자유의 씨앗으로 이곳에 뿌리고 간, 미국과 프랑스의 천사적인 UN군 전사자 장병들의 영혼을 위하여, 그리고, 또 이국 땅 한국에 와서, 고향의 부모 형제들을 그리워하며, 애타게 어머니만을 찾으며 부르면서 죽어간, 이름도 모르는 불쌍한 중공군 수만명 장병들의 영혼을 위하여도, 이들을 모두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맡겨드리며, 오늘 아침 곡수리 공소 성당에서는 파로호 격전지 순례 길을 떠나기 전에, 우리 직원들이 위령미사를 바쳤답니다. 또한,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지구상의 어디에서도 결코 절대로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이처럼 한 조각 돌이라도 세워서 우리 후대를 가르치는 선인들께도 감사하며,,,!!!


- 변기영 몬시뇰 -



1951년 봄 지평, 용문산, 중공군 격파 승전 기념비 화천 파로호 순례(2021.11.12)



1951년 봄 지평, 용문산, 중공군 격파 승전 기념비 화천 파로호 순례(자유수호탑, 파로호를 순례하는 변기영 몬시뇰, 2021.11.12)



1951년 봄 지평, 용문산, 중공군 격파 승전 기념비 화천 파로호 순례(자유수호탑, 파로호를 순례하는 변기영몬시뇰, 2021.11.12)



화천 파로호 비 해설문(2021.11.12)



1951년 봄 지평, 용문산, 중공군 격파 승전 기념비 화천 파로호 순례(자유수호탑, 파로호를 순례하는 변기영 몬시뇰, 2021.11.12)



1951년 봄 지평, 용문산, 중공군 격파 승전 기념비 화천 파로호 순례(자유수호탑, 2021.11.12)



1951년 봄 지평, 용문산, 중공군 격파 승전 기념비 화천 파로호 순례(자유수호탑, 2021.11.12)



1951년 봄 지평, 용문산, 중공군 격파 승전 기념비 화천 파로호 순례(자유수호탑 해설문, 2021.11.12)



1951년 봄 지평, 용문산, 중공군 격파 승전 기념비 화천 파로호 순례(양평본당, 곡수리 공소, 하느님의 종 순교자 사우거사 권일신 기념서재, www.msgr-byon.org, 자료실장 고옥자, 편찬실장 허관순, 2021.11.12)



1951년 봄 지평, 용문산, 중공군 격파 승전 기념비 화천 파로호 순례(고옥자 자료실장, 전 천진암성지 박희찬 사무구장, 2021.11.12)



1951년 봄 지평, 용문산, 중공군 격파 승전 기념비 화천 파로호 순례(양평본당, 곡수리 공소, 하느님의 종 순교자 사우거사 기념서재, www.msgr-byon.org, 자료실장 고옥자, 편찬실장 허관순, 2021.11.12)



1951년 봄 지평, 용문산, 중공군 격파 승전 기념비 화천 파로호 순례(전 천진암성지 박희찬 사무국장, 2021.11.12)



화천 파로호(2021.11.12)



춘천 천전리 지석묘군 순례(2021.11.12)



춘천 천전리 지석묘군 순례(2021.11.12)



춘천 천전리 지석묘군 순례(2021.11.12)


 

1951년 2월 초부터 5월 말까지, 지평과 용문산 가평,등 화천 지역에서 중공군 3개 사단 5만여 명과 격전 끝에 미군과 프랑스군의 지원을 받은 불과 소수의 국군과 UN군이 2만여 명의 중공군을 사살하면서 대승을 거두어, 수도 서울을 사수하면서, 오늘의 휴전선까지 중공군들을 물리친 대승의 [화천 파로호 승전 기념비] 순례 ! - [변기영 몬시뇰 사랑방, www. Servant Hall of Msgr. Byon] 직원들(2021.11.12)

1951년 봄, 지평, 가평, 용문산, 화천 지역에서 의 대격전 파로호 대첩은, 북한 공산당 인민군이 1950년 6월 25일부터 기습 남침하여 3일만에 빼앗았던 수도 서울이 1950년 9월 15일, 국군 특수부대 요원들의 참여와 지원을 받으며 미군의 인천상륙 작전 대승과 함께, 1950년 9월 28일 국군과 UN군이 서울을 완전히 수복하고, 평양을 점령하고, 앞록강까지 진격하자, 100만이 넘는 중공 대군이 북한 공산군을 지원하기 위하여, 특히, 남침 3일만에 기습 점령하여 빼앗았던 서울을, 빼앗긴 후 3개월 만에 다시 국군과 UN군에게 빼앗기자 이를 다시 최종적으로 빼앗기 위하여, 모택동의 오른 팔과 같이 중국 공산화 유혈혁명의 대장정 동료 팽덕회가 지휘하는 중공 집단군 3개사단 약 4만 5천여 명~5만여 명이 지평과 용문에 대규모로 집결하여 1951년 2월 13일 경부터 10여일간의 혈전을 시작으로 5월말까지 가평과 화천 지역에서 국군과 UN군에게 대패하였다.

 

특히 지평과 용문산 전투 최종 3일간은  피아 쌍방의 실탄이 모두 소진되고, 식량도 떨어져 굶어가며 소총을 꺼꾸로 잡고 몽둥이 삼아, 이른 바, 백병전으로 처절하게 난투극을 벌였으나, 그래도 국군 6사단과 8사단 일부가 지평에서 재집결 편성한 국군이 미군 특전 기갑연대와 프랑스 육군 1개 대대 6백여 명은 제공권을 장악한 미공군이 공중 투하하는 비상 대용식량 통조림으로 허기를 면할 수 있었으나, 중공군은 수송차량이 전혀 없이 도보로 이동하며, 낮에는 숨어서 자고, 밤에는 분대별, 소대별, 중대별로 아군을 기습하며 발악을 하였으나, 아군은 미 공군의 폭격과 미군 기갑부대의 지원을 받으며 중공군 약 2만여 명을 사살하면서 수도 서울 재 점령 작전계획을 사전에 방어하면서, 오늘의 휴전선까지 중공군 대부대를 퇴각시켰다. 

 

낙동강 다부동 전투는 주로 인민군 육군 부대만을 상대하며 싸우던 전투였으나, 이와는 달리, 지평과 용문산에서의 전투는 주로 약 5만여 명에 달하는 중공군과의 격전이었고, 우리국군을 지원하는 미군과 프랑스군이 U.N. 이름으로 함께, 특히 1951년 2월 13일부터 10여일간 지평과 용문산 전투에서는 약 2만여 명의 중공군을 사살하며 대승을 거두어, 가평, 청평, 화천에 이르는 중공군 대부대를 격파하여 오늘의 휴전선까지 퇴각시킨 최대 승전 기념비로 이승만 대통령은 [화천호]를 [파로호破虜湖] 로 명명함과 동시에 승전 기념비를 세웠다.

 

<破虜湖>11월은 위령성월입니다. 천주교회에서는 먼저 세상을 떠난 조상님들과 친척들과 모든 영혼들을 기억하며 매일 기도하고 미사를 올리며, 많은 이들에게 잊혀진 불쌍한 영혼들을 위하여, 무덤이나 연고지를 찾아 순례하며, 기도하는 달입니다. 

 

70 여년 전 지평, 용문, 가평. 청평. 화천, 등지에서 우리나라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전 세계 인류의 자유를 위하여, 反의 깃빨을 드높이 휘날리며 용감히 싸우다가 거룩히 전사한 우리 국군 용사들과, 특히 나이 어린 학도병 무명 순교 용사들과, 더욱이 고국을 떠나와서, 이 심산궁곡에서 공산주의와 싸우다가 깨끗한 끓는 피를 자유의 씨앗으로 이곳에 뿌리고 간, 미국과 프랑스의 천사적인 UN군 전사자 장병들의 영혼을 위하여, 그리고, 또 이국 땅 한국에 와서, 고향의 부모 형제들을 그리워하며, 애타게 어머니만을 찾으며 부르면서 죽어간, 이름도 모르는 불쌍한 중공군 수만명 장병들의 영혼을 위하여도, 이들을 모두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맡겨드리며, 오늘 아침 곡수리 공소 성당에서는 파로호 격전지 순례 길을 떠나기 전에, 우리 직원들이 위령미사를 바쳤답니다. 또한,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지구상의 어디에서도 결코 절대로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이처럼 한 조각 돌이라도 세워서 우리 후대를 가르치는 선인들께도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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