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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천주교회 창립자 이벽 성조의 생애(1,2부)
출처 PBC 평화방송 '장하다 순교자, 신앙의 용사여!' 작성자 Msgr. Byon / 작성일 : 2016-11-17  (조회 : 40488)
<이벽 성조의 생애와 최후>

Life & Martyrdom of John Baptist Yi Byeok, Server of God, the Founding Father of the Church in Korea- By Mgr. Peter Byon.

 

이번 강의는, 되도록 평전 형식으로, 특히 250여년 전 우리나라의 생활관습과 문화 속으로 들어가서, 당시의 역사를 이해하도록 힘썼습니다. 당시 우리 선조들의 생활 관습을 모르면, 한국교회 창립사에 대하여도 오해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한국천주교회 초기 창립사는 마치 새  싹이 움이 트고 싹이 돋아서 자라날 때 온갖 어려움을 격듯이, 많은 역경을 극복하며 성장하였음을 볼 수 있다. 광암 이벽 성조께서 처음 한양에서 이기양, 이가환, 등의 학자들과 공개 토론에서 대승을 거두자, 당시 유림에서는 벽위편에서 볼 수 있듯이,경주이씨 가문의 이벽과, 안동 권씨 문중의 권철신, 권일신과 평창이씨 집안의 이승훈 진사와 라주 정씨 집안의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등이 서양 오랑캐의 도를 하는 5,6명의 젊은 선비들은 양반 집 울타리 밖으로(揮之門之外也), 상민의 무리로 몰아내라는 통문을 돌렸으나, 그래도 진리를 찾으며 정의를 외치던 이기양, 이가환, 같은 학자들은 후손들에게까지 天學을 믿고 실천케 하여,이기양의 아들 이방억의 아들 이의창은 훗날 김대건 부제와 함께 서해 바다를 건너가 김대건 신부의 신품식에 참석하고, 함께 귀국하여 순교하였다.

그러나 하느님의 안배의 손길은 우리 선조들과 함께 하였으니, 조선 교구 설정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북경교구의 폴투갈계 데 리베이로스 등 성직자들이 없지않을 때, 새로 교황이 된 그레고리오 16세께서는 (전 포교성 장관 까펠라리 추기경) 조선 평신도들의 애절한 간청을 받아들여 조선교구를 설정하시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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